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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새 국무장관 라이스]흑인여성 첫 美외교 사령탑

입력 | 2004-11-16 18:27:00


‘피아니스트를 꿈꾸던 수재 소녀가 힘의 외교를 신봉하는 미국 외교의 수장으로….’

흑인 여성 최초로 미 국무장관에 지명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50)은 뛰어난 국제정치학자 출신. 쾌활하면서도 강인하고 복잡한 국제문제를 쉽고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 포스트 부국장은 저서 ‘공격 명령’에서 라이스 보좌관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눈과 귀를 장악했다고 묘사할 정도로 부시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고 있다.

라이스 보좌관은 미국 남부에서도 인종분리정책이 가장 극심했던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나 목사이며 교육자인 아버지를 따라 콜로라도주 덴버로 이주해 대학을 다녔다.

피아노 연주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지만 연주자가 되기 어려운 척박한 현실 때문에 대학 진학을 앞두고 포기했다.

대학 시절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부친인 조지프 코벨 교수의 영향으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다.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 중 한 명으로 꼽는 코벨 교수의 지도로 결국 소련학 박사가 됐으며 27세에 스탠퍼드대 최연소 교수가 된 뒤 교무처장을 지냈다.

1987년 스탠퍼드대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당시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국가안보보좌관의 눈에 띄어 1989년부터 2년간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일했다.

부시 전 대통령의 권유로 텍사스 주지사이던 부시 대통령을 처음 만나 2000년 대선 당시 외교정책수석보좌관으로 활약하면서 ‘외교 과외교사’ 역할을 했다.

1976년 대선 때만 해도 그는 민주당원으로 지미 카터 후보를 지지했다. 그러나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대한 카터 대통령의 대응에 실망해 1980년 대선 때 ‘강력한 힘’을 주창하는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 이끌려 공화당원이 됐다.

10세 때 부모와 함께 백악관 정문 앞에서 “내가 밖에서 백악관을 구경해야 하는 건 피부색 때문”이라며 “반드시 저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했다는 일화는 그의 집요한 성취욕을 보여준다.

부시 대통령에게서 ‘콘디’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그의 이름은 어머니가 부드럽게 연주하라는 이탈리아어 음악용어 ‘콘 돌체자(con dolcezza)’에서 따온 것.

미식축구광으로 공을 패스하거나 상대 진영을 향해 멀리 던지는 쿼터백에 자신을 자주 비유했으며 미식축구와 전쟁을 연계한 그의 강의는 초만원을 이룰 정도로 인기였다.

미식축구 선수와 약혼한 적이 있지만 현재는 ‘정신적 교감을 나눌 만한 영혼의 동반자를 찾지 못해서’ 미혼이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