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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여선생 vs 여제자’ 是是非非

입력 | 2004-11-17 18:28:00


지방 초등학교에 잘 생긴 총각 미술교사(이지훈)가 부임해 온다. 5학년 담임인 노처녀 여교사(염정아)와 같은 반 여제자(이세영)가 이 미술교사를 두고 불꽃 튀기는 애정다툼을 벌인다. ‘여선생 vs 여제자’는 이런 ‘가능하진 않지만 납득할 만한’ 상황을 코믹하게 다룬다. 진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이 영화 속에 숨어 있는 초등학교 교실 내의 내밀한 문화들이다. 이들 장면은 진짜일까, 과장일까, 아니면 새빨간 거짓말일까.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초등학교 5학년 담임(여)과 6학년 담임(남) 교사가 이 영화의 논쟁적 장면 다섯 곳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졌다.

장면① 가슴이 없는데도 ‘뽕브라’를 착용한 여학생들을 여교사가 색출한다

거짓말이다. 4학년만 돼도 브래지어 착용을 권장한다. 남학생들이 “가슴 나왔다”며 놀려대는 통에 여학생들이 어깨를 구부정하게 하고 다녀 체형을 망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학생들의 성숙도는 까무러칠 정도다. 새벽 2시에 느닷없이 “샘(선생님). 모해(뭐해)”하고 메신저에 접속해 “너 안 자냐. 지금 성장호르몬 나올 시간인데”라고 나무랐더니, 대뜸 “월경도 시작했으니 성장호르몬 분비가 둔화돼. 샘, 걱정 마셩(마세요)”이란 답을 보내왔다.

장면② 여학생들이 폰카(휴대전화에 달린 카메라)에 미술교사를 담는다

현실은 더하다. 미남 교사 뿐 아니라 증오하는 교사도 폰카의 단골 대상이다. 아이들은 싫어하는 교사를 찍은 뒤 그림판이나 포토숍을 사용해 콧물을 흘리거나 흉터가 심한 얼굴로 바꿔 자기 홈페이지나 카페에 올린다.

장면③ 여학생이 미술교사를 끌어안으며 애정표현을 한다

장면 ③

가능하다. 일부 여학생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선생님을 사랑해요”라고 말해 교사의 얼굴을 빨갛게 만들 때도 있다. 이 영화처럼 아이들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여학생들은 “샘, 추워요”라며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문구를 보낸다. 남학생들은 “야옹” “멍멍” 등 동물 울음소리를 문자로 보내며 관심을 끈 뒤 시기가 무르익으면 “샘, 이혼하지 마세요. 이혼하면 제가 바로 데려갈 거니깐”으로 변한다. 유부녀 여교사가 미혼 남자 교사의 교실을 방문하면 “아줌마가 왜 총각 방에 들락거리지”라며 핀잔을 주는 반항적 여학생도 있다.

장면④ 미술교사가 여학생과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자른다

장면 ④

문책 사유가 될 만하다. 학교 밖에서 개별 만남과 활동을 벌이려면 교장 교감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갓 부임한 젊은 남자교사에겐 6학년 담임을 잘 맡기지 않을뿐더러 맡길 경우에도 △학생과 개인적으로 만나지 말 것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두드리는 사소한 행동도 성적인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으니 삼갈 것 등을 명시한 교장 지침이 내려간다.

장면⑤ 여교사가 학생 집을 방문한다

장면 ⑤

거의 사라졌다. 아이가 상습 흡연하거나 점심 급식을 세 번이나 먹는 폭식성 비만일 경우 가정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요즘엔 한 집에 성(姓)이 다른 6학년 학생이 3명 이상 산다든가, 아파트 한 동에 초등학생 100명 가까이 사는 경우 ‘실(實)거주 조사’란 이름의 가정방문이 이뤄지기도 한다. 좋은 중학교에 배정받기 위한 주소지 변경 행위 적발이 목적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