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줄곧 20%대를 맴돌고 있다. 그런데도 여권 핵심 관계자들은 2007년 대선에서의 ‘정권 재창출’ 문제에 관한 한 그리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다.
여권 내 전략통들의 견해는 “혹시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선 참패하더라도 대선은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최근 헌법재판소를 공격한 386 소장-진보그룹 의원들의 폭주(暴走)성 발언도 지지층 결집 효과를 감안하면 손해는 아니다”라는 게 솔직한 속내다.
이들의 낙관론의 근거는 명쾌하다. 우선 수도 이전 공방 과정에서 충청지역이 한나라당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실제 수도권 거주자를 포함해 전체 인구의 43%로 추산되는 ‘호남+충청 연합군’의 위력을 감안하면 ‘영남표+α’(전체 인구의 33% 선)에 의존해야 하는 한나라당은 이 격차를 메워 낼 뾰족한 대책이 없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호남이 대선에서 전략적 선택을 할 것이 분명한 데다 최악의 경우 ‘통 크게’ 양보하고 민주당을 끌어안으면 된다”고 말했다.
더욱이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논란 속에서 열린우리당은 ‘진보’라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최근 본보가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자신을 ‘진보’로 자리매김한 응답자는 36.7%, ‘중도’는 38.1%, ‘보수’는 21.7%였다. 보수의 간판으로는 주류를 차지하기 어렵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구조적 한계를 감안하면 이제 한나라당의 유일한 활로는 ‘뉴 라이트(New Right)’로 상징되는 이념의 중간지역으로 진출하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
물론 열린우리당이라고 해서 결코 한가한 처지는 아니다. 최근 친노(親盧) 세력의 이탈이 가속화되자 “구조적 우위만을 믿고 방심할 수 없다”는 경계론이 확산되고 있다. 대통령비서실장 출신인 문희상(文喜相) 의원이 16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30%와 30%의 수구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40%가 저쪽으로 가려 한다”며 중도세력을 잡기 위한 ‘개혁속도 조절론’을 내세운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문제는 각 정파가 겪고 있는 자기정체성의 혼란 때문에 한국정치의 이념 공방이 철저히 정략적-자의적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보수’와 ‘좌파’가 갖고 있는 어두운 역사 유산을 의식해 여야는 서로 상대방이 자신에게 붙이는 ‘정치적 조어’에 부정의 논리로 일관한다. 한나라당이 “왜 보수가 나쁘냐”는 적극적 반론을 펴지 못한 채 수세에 급급한 반면 열린우리당은 “우리가 왜 좌파냐”고 항변하는 대응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중도를 향한 구애(求愛)의 경쟁에 앞서 이제는 자기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가 왔다. 특히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우파가 ‘시장’과 ‘자유’를, 좌파가 ‘분배’와 ‘평등’에 좀 더 치중하는 것이라면 한국정치의 이념지형은 이제 좌우의 개념으로 재정리돼야 할 듯하다.
‘실용주의’와 ‘좌(左)편향’을 오락가락하는 포퓰리즘적 태도나 수구기득권의 이미지와 절연하지 못하는 소극적 방어논리로는 합리적 비판세력의 무한 잠재시장인 ‘뉴 라이트’를 잡을 수 없다. 여고 야고 먼저 자기 이념좌표부터 정확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동관 정치부장 dk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