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월식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꽁꽁 언 손을 녹이며 스케치북에 찌그러져 가는 달의 모습을 그렸고, 중학교 때는 76년 만에 지구를 찾아온 핼리혜성에 관한 신문기사를 모두 스크랩해 두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나는 물리 수학 컴퓨터를 좋아했고, 집 근처에서 30분∼1시간은 족히 걸어가야 하는 컴퓨터 대리점들에서 죽치고 살기도 했다.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천문학을 공부했고, 우주에서 초창기에 생긴 별 탄생 은하들의 특성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땄다.
그런가 하면 어려서부터 한문과 역사에 관심이 있었기에 역사서를 중심으로 고전 경서들을 취미삼아 읽곤 했다. 그러다 천문학을 전공하게 되니 관심은 자연스럽게 역사천문학 방면으로도 가게 됐다. 옛날 별똥 기록과 일식, 월식, 혜성 기록 등을 연구해 그 결과를 국내외 학술지에 발표하고, 옛날 우리 선조들이 쓰던 별자리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다.
이렇게 별 보는 일을 하다보면 종종 “왜 쓸 데도 없는 일을 하느냐”는 얘기를 듣는다. 천문 연구가 별로 생산적으로 보이지 않는가 보다. 그러나 과학의 역사를 보면 인류의 사고를 바꾼 새로운 아이디어는 늘 그렇게 ‘쓸데없는 짓’에서 시작됐다. 시대를 앞서 갔기 때문에 그렇게 여겨졌을 뿐이다. 그런 참신한 아이디어들 가운데 일부는 어떤 계기를 만나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기도 하고 인류의 정신을 혁신시키기도 하는데, 그런 발견에 노벨상이 주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런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능력 있는 몇 사람의 공이 아니라 사실은 그 저변에 수많은 유능한 과학자 집단이 있어야만 나올 수 있다. 과학은 마치 월드컵 대표선수들을 집중 조련해서 4강에 들듯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 연구소들의 인원이 각각 1000명을 넘는 규모인 까닭은 그 정도는 돼야 우수한 인재들이 그곳에 발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는 우주 저 멀리에 있는 천체 1억개 이상을 관측하는 슬론 디지털 우주조사사업을 지원하는 슬론 재단이 있는가 하면, 100억년 전의 우주 모습을 보여주는, 하와이의 마우나케아산 꼭대기의 구경 10m짜리 쌍둥이 켁 망원경을 설치해 준 켁 재단이 있다. 이들 재단은 인류의 이해를 깊게 하는 과감한 아이디어들을 발굴하는 일, 미래의 발견의 씨앗을 심는 일, 당면한 과제를 풀 수 있는 창의적인 접근법을 연구하는 일, 거대한 스케일에서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 후손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일 등을 지원한다고 한다.
나는 지금 한국천문연구원에서 구경이 6∼8m인 차세대 망원경을 건설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큰 망원경이 있으면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둘러싼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데, 국내 굴지 반도체회사의 하루치 순이익만 있으면 이런 망원경 한 대를 관측 여건이 좋은 외국의 관측지에 건설할 수도 있다. 국내총생산(GDP) 1만달러의 늪을 빠져나가는 데 분명히 도움이 될 아이디어들을 생산해낼 수 있도록 한국 사회가 젊은 과학자들에게 꿈을 펼칠 기회를 많이 만들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약력:
1971년생으로 서울대 천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등과학원 연구원을 거쳐 현재 천문연구원에서 근무 중이다. 저서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별자리’가 있다.
안상현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