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양탄자처럼 깔린 춘천 은주사 오솔길을 향원스님(사진 오른쪽)과 함께 걸었다. 길이 다하는 곳에 절이 있는 것처럼 구도의 길도 끝이 보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마음에도 무게가 있을까.
없다면 가슴 한편을 짓누르는 이것은 무엇인가.
생각에도 크기가 있을까.
없다면 머릿속을 꽉 채운 이것은 또 무엇일까.
남 보기엔 그다지 모자라지 않은 삶.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텅 빈 내 마음을 보았다.
조국과 이상, 사회공헌, 자아실현…. 어줍지 않은 이 몇 마디 말에 의지해 살아야만 한다고 믿었던 나날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친구도, 행복도, 기쁨도 간곳없고 황량한 외줄 들길을 위태위태하게 걷고 있는 인형 하나가 서 있다.
싫다. 세상이.
그래서일까. 해마다 출가자가 늘고 있다고 뉴스에 오르내린다.
부처를 만나기 위해 속세를 떠난 사람들. 그 안의 또 다른 세상.
머리를 깎고 행자가 돼 함께 생활을 해 보았다.
혹시 재수 좋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파르라니 깎은 머리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봉원사에서 삭두로 머리를 밀고 있는 모습. 요즘 삭두는 실제 머리를 깎는 것보다는 의식의 한 부분에 사용된다.
행자란 스님이 되기 전 일정 기간을 절에서 생활하며 온갖 잡일과 궂은일을 하는 사람. 물론 참선 예불 등 공부도 함께 한다.
정해진 기간은 없지만 대략 6개월에서 1년여를 보내고 나면 인연을 맺은 절의 추천을 받아 한 달여간의 교육을 받고 예비 스님(사미)이 된다. 종파마다 차이는 있지만 예비 스님이 된 지 5∼7년이 지나면 법명을 받고 진짜 스님이 된다.
이른 새벽,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봉원사에서 머리를 깎고 강원 춘천시에 있는 은주사로 가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옛날에는 삭두(머리 깎는 칼)로 직접 머리를 깎았다지만 요즘은 바리캉으로 일단 밀고 면도기로 다듬는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도, 군대 갈 때도 빡빡 깎아 봤으니 ‘무슨 대수랴’ 싶었는데 전날부터 마음이 까닭 모르게 울적해졌다. 괜히 밖에 나와 한참을 돌아다니기 몇 차례.
진짜 출가를 하려는 사람들은 얼마나 번민에 휩싸였을까.
사랑하는 사람, 친구, 가족, 즐거웠던 순간과 힘들었던 나날들, 속세의 연을 끊고 떠난다는 것….
차가운 금속성 물체가 뒷덜미에 닿자 머리털이 쭈뼛 섰다. ‘툭, 툭’ 거침없이 떨어지는 검은 덩어리.
마음속에서 작은 음성이 들린다.
‘이봐 아직 늦지 않았어. 꼭 깎을 필요는 없잖아?’
유혹은 절반 이상을 깎을 때까지 그치지 않았다. 만약 내 손으로 직접 깎았다면 그만두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속담이 생겼나.
삭발을 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웬 조폭 하나가 덩그라니 서 있다.
거울 속의 놈은 멋쩍은 듯 배시시 웃는다. 거울 속에 ‘놈’을 보고 내가 웃은 것일 테니 내가 웃은 것은 ‘나’ 때문인가 ‘놈’ 때문인가.
○ 108배, 1000배, 3000배
머리를 깎아 준 성진 스님, 향원 스님과 함께 춘천 가리산에 위치한 은주사로 향했다.
머리를 깎고 행자복을 입으니 알게 모르게 행동에 제약이 온다. 담배도 눈에 띄게 피울 수 없어 화장실에서 숨어서 피웠다.
비구가 지켜야 할 계가 250여개고 비구니는 300개가 넘는다고 하지만 담배 피우지 말라는 계는 없다는데….
은주사는 비구니 스님 두 분만 기거하는 아주 작은 암자. 향원 스님이 인연을 맺어 행자 생활을 한 곳이다.
절의 하루는 새벽 3∼4시경 새벽 예불로 시작해 오전 6∼7시, 정오, 오후 5∼6시에 공양(식사)을 하고 저녁 예불을 거친 뒤 오후 9시경 취침으로 끝난다. 나머지 중간 시간에는 각자의 소임을 하거나 공부, 참선, 예불 등을 하게 된다.
도착하자마자 주지인 정인 스님이 떡, 커피, 김치, 물김치가 차려진 다과상을 내오셨다.
‘커피에 웬 물김치?’ 의아해 물어보니 “있는 것은 다 내 주는 것이 절집의 마음”이란다.
은주사가 작은 절이기는 하지만 찾아서 일을 하려면 끝이 없었다. 향원 스님은 오자마자 무 걷이, 쓰레기 태우기, 갖가지 수선 등으로 분주하기만 했다.
‘밥값은 해야 하는데….’
그래서 맡은 것이 수백개의 무 꼭지 자르는 일과 청소, 쓰레기 태우기 같은 단순 잡일. 장작패기를 하려 했지만 다행히(?) 도끼가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대망의 1000배 도전 시간.
108배, 1000배, 3000배, 1만배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향원 스님은 “횟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번을 하더라도 마음이 중요하다”며 “몇 번이나 하겠느냐”고 물었다.
“정성을 다한 1배요.”
조금 고생하면 할 수도 있겠다 싶어 시작했는데 몇 십 번도 되지 않아 다리가 떨리고 무릎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 번뇌는 별빛이라
행자의 일은 끝이 없다. 일을 통해 부처님의 은덕을 조금이라도 갚아야 하기 때문. 은주사에서 무를 다듬는 모습.
태고종의 경우 술이나 담배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결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가정을 가진 스님도 꽤 있다.
별빛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 괜히 그래야 할 것 같아서 성진 스님에게 질문을 던졌다.
“스님, 인연이란 무엇인가요.”
“그것 알면 공부 다 한거네.”
헉!
“스님, 경지에 오르면 곡차(술의 은어)를 마시나 차를 마시나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까불지 말게.”
헉!
“스님은 왜 출가하셨나요.”
“인연이 닿아서라네.”
그래도 사람인지라 시간이 흐르면서 스님의 말문도 트이기 시작했다. 큰스님들에게는 삶의 문제를 물으러 오는 사람이 많은데 대개 미소로 화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불교는 삶을 초월하고자 하는 종교인데 삶 속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느냐는 것. 쉽게 말해 번지수가 틀렸다는 것이렷다.
무식한 생각에 사람이 어떤 결심을 하면 출가를 하게 되는지 물었다. 태고종의 경우 2000년 115명에서 2002년 164명, 그리고 올해 264명으로 매년 출가자가 늘고 있다.
태고종보다 출가자격이 엄격하다는 조계종도 매년 270명 정도가 출가를 하고 있다.
“살기가 어려워지면 수가 늘기는 하네.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르지. 구체적으로 묻는 일도 없고…. 도반(함께 출가한 동문)끼리도 그런 것은 잘 묻지 않네. 그저 인연이 닿아서 그러려니 할 뿐….”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세를 떠났는데 속세를 떠난 이유를 묻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취재를 하는 불쌍한 중생 하나 구제하기위해 스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여러 가지 일을 해도 잘 안됐다는 것. 독실한 불교 집안이었다는 것. 어릴적에 출가할 기회가 있었지만 싫어서 안했는데 결국 나이 들어 출가를 하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하더라는 것 등.
‘성불하소서….’
태고종은 승려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자연스레 출가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금 하는 일이 잘 안되고 힘든데 해결할 방법은 없나요.”
“전생에 지은 업 때문에 당하는 일인데 피해 가려고? 힘들어도 지금 풀고 가야 다음 생에서는 안 겪지. 내생에 또 짊어지려고?”
출가하는 모든 사람은 크든 적든, 알든 모르든 불교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비록 취재지만 자네가 여기 있는 것도 인연이라네. 출가해 볼 생각 없나. 참 잘 어울리네.”
“전 유혹이 많은 곳이 좋은데요.”
“아닐세. 말은 그래도 다 부처님의 뜻에 따라 여기까지 온 거라네. 한번 생각해 보게나.”
이날 밤 109번째 번뇌가 생겼다.
○ 산다는 것은
“스님, 산다는 것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잘 살아 온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보면 뭘 하고 살았는지도 모르겠고….”
“나도 묻고 싶은 거라네.”
“해탈의 경지라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요.”
“자네 머리 깎고 나니 외모에 신경이 쓰이던가.”
“처음엔 신경이 쓰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무덤덤해 지네요.”
“적어도 머리 때문에 괴로운 일은 없지 않은가. 최상의 헤어스타일을 하면 그 이후에는 머리에 신경을 안 쓸 것 같나. 머리를 버리니 머리에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지. 다른 것도 마찬가지일세.”
실제로 머리를 밀고 나니 옷차림이나 외모 등에 신경을 안 쓰는 자신을 발견했다. 정확히 말하면 무슨 옷을 입어도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였지만….
출세도, 돈도, 명예도 다 더 가지려는 데서, 남보다 더 나아지려는 데서 고생이 생기는 것이렷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당연한 감정이든 아니든 확실히 고통과 번민은 거기서 생기는 것 같다.
“자네 걸리버 여행기 봤나.”
“네.”
“거기 말의 나라 이야기에 야후라는 사람 비슷한 동물이 나오지. 반짝이는 돌을 갖기 위해 서로 싸우고 숨기고, 잃어버리면 슬퍼하고 병드는…. 자네가 가지려는 그 무엇이 그 반짝이는 돌과 무슨 차이가 있겠나. 그러니 그것을 잃어버리면 낙심하고 세상 다 끝난 것 같고 죄진 것도 아닌데 피하고 숨어 지내는 것 아니겠나. 돈이든, 자리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
바람이 차다.
잔뜩 먹구름이 끼어 별빛조차 보이지 않는 하늘.
수십년 면벽(面壁) 수행을 해도 얻기 힘든 경지를 어찌 쉽게 논할 수 있으랴만
적어도
반짝이는 돌을 잃고 나서 슬퍼하는
야후를 어리석다고 비웃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게 거울 속의 나였으니….
글=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사진=강병기기자 arche@donga.com
▼장좌불와 면벽 묵언수행…멀고도 험한 깨달음의 길▼
봉원사에서 스님들이 참선 수행을 하고 있는 모습. 가운데 스님이 든 것은 죽비로 수행과정에서 흐트러진 스님을 깨우칠 때 사용한다.사진제공 봉원사 선암 스님
달마조사의 9년 면벽 수행, 장좌불와(長坐不臥), 묵언(默言)수행….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것이 지름길이고 맞는 방법인지는 알 수 없는 일. 득도를 하는 데 왕도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묵언은 수도자들이 가장 많이 쓰는 수행 방법. 입으로 하는 ‘말’만 삼가는 것은 아니다. 의사를 표현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해당한다.
말은 갖가지 시비와 분쟁을 낳는다. 말을 줄이면 잡다한 생각이 줄어들어 더욱 정진할 수 있다. 짧으면 며칠간, 길면 몇 년 동안 묵언한다.
예전에 태고종 한 절에서 화재가 났는데 묵언수행 중이던 한 스님이 화재신고를 하지도, 다른 사람을 깨우지도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절은 전부 타버렸다.
이때 묵언을 지키는 게 옳았느냐는 문제가 논란이 됐다. 종단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징계도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행 중에 몸이 아파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웬만한 병은 민간요법으로 스스로 치료를 하든지, 수행을 중단하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
장좌불와란 잘 때 눕지 않는 것. 식사나 간단한 운동 등을 제외하면 좌선한 상태로 계속 지내는 것을 말한다. 2003년 입적한 청화 스님은 40여년간 장좌불와를 실천했다고 한다.
보통 수행과정에서는 50여분간 좌선하고 10분 정도 쉰다. 처음에는 다리에 피가 안 통해 고통스럽지만 익숙해지면 아픔이 사라지고 편안해진다.
그보다는 다리의 아픔이 사라지면서 수마가 찾아오는 것이 더 큰 고통이다.
면벽수행도 진짜로 벽만 바라보며 참선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선을 빼앗기면 수행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벽 앞에 앉아 수행을 했다는 것. 장좌불와든, 면벽수행이든 방법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조계종 성전 스님은 말한다.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스님들도 있다고 한다.
머리 위에 큰 돌을 매달고 ‘언제 어느 때까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줄을 끊어 달라’고 하는가 하면 수행은 아니지만 손가락에 불을 지피는 소신공양, 심하면 장작더미에 올라가 불을 붙이는 방법도 동원된다.
그래서 수행하는 과정을 ‘용맹정진’이라고도 한다. ‘나’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모험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참선 호흡법은 편안한게 좋아▼
사색과 명상의 계절이다.
불교의 수행방법을 이용해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으면 이 가을 스스로를 훌쩍 성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불교도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주말을 이용해 1박2일짜리 템플스테이에 참여해도 좋다.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수행방법은 가장 쉬운 것이 결가부좌로 명상에 잠기는 것. 앉은 상태에서 양 발바닥이 하늘을 향하도록 반대편 허벅지 위에 올리고 허리를 세운다. 이때 턱을 조금 끌어당기고 눈은 1m 앞을 바라본다.
양손은 가볍게 주먹을 쥐어 무릎 위에 올리거나 가볍게 모아 잡고 아랫배 쪽에 놓고 혀끝을 위쪽 치근에 가볍게 댄다. 호흡은 코로 가늘게 천천히 들이쉬면서 ‘하나’, 내쉬면서 ‘둘’ 이렇게 반복한다.
참선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1부터 10까지 반복해서 속으로 세는 것을 되풀이하다 보면 자연스레 집중력이 생기고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결가부좌가 어렵다면 한쪽 발만 허벅지 위로 올리는 반가부좌를 해도 상관없다.
누워서 하는 와선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 아주 편한 상태로 누워서 마음을 고르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자기 전과 일어난 후에 조금씩만 해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서서 하는 입선, 의자에 앉아서 하는 의자선도 약식이지만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입선은 잠시라도 서 있을 때 두 다리를 어깨 넓이만큼 벌리고 상체의 균형을 유지한 뒤 좌선과 마찬가지로 숨을 쉬면 된다. 의자선도 앉는 자리만 의자라는 것일 뿐 좌선과 차이가 없다.
수행자들은 호흡법에도 신경을 쓰지만 일반인은 자신에게 가장 편한 호흡법을 하면 된다고 한다.
성전 스님은 “뛰거나 놀랐을 때 호흡이 거칠어지는데 그런 상태에서는 마음의 편안함을 절대로 가질 수 없다”며 “일반인의 경우 여러 가지 호흡법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에게 가장 편안한 상태로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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