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를 절약하자’는 구호는 어쩐지 공허해 보인다. 늘 들어왔다. 친숙하지만 절실하게 피부에 와 닿지는 않는다.
“전기제품을 안 쓸 때는 플러그를 빼놓고, 형광등은 꼭 끄고…”라고 얘기하면 “그래서 얼마나 아낀다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자잘한 것까지 신경을 쓴다고 꽁생원 소리를 듣기도 한다.
가정에서 에너지를 절약하면 금전적으로 얼마나 이익일까.
에어컨 냉장고 조명기기 TV 세탁기 진공청소기 등 6가지 가전제품만이라도 제대로 사용하면 전기요금을 연간 26만원 이상 아낄 수 있다(그래픽 참조). 전기요금은 누진제라 많이 쓰면 더 비싼 요율을 적용 받는다. 한달에 201kWh를 쓰던 가정이 199kWh를 쓰면 적용되는 요율 자체가 달라진다. 전기 사용량이 줄어들면 전기요금의 절약 폭은 더욱 커진다.
가전제품의 플러그를 빼지 않아 들어가는 대기전력은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각 가정으로 따지면 얼마 안 될지 모르지만 국가 전체로는 연간 5000억원. 호텔처럼 카드를 뽑으면 냉장고 보일러 등 늘 켜놓아야 하는 제품만 빼고 나머지 전기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장치는 왜 없을까.
국가의 정책적인 고려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게 할인점의 심야영업이다. 24시간 영업을 하는 A할인점은 점포당 매출이 하루 3억1000만원쯤 된다. 한 달이면 90여억원. 이 중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의 매출은 한달 3억3000만원. 전체 매출의 3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밤에 영업을 하면 에너지 비용은 2배 이상으로 는다. 여기에 심야 인건비, 관리비 등도 2∼3배로 늘어나 수익구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심야영업에 따른 위험까지 감안하면 정상영업이 훨씬 유리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심야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면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24시간 영업을 하는 이유는 경쟁 때문이다. 경쟁업체가 24시간 영업을 하는데 혼자만 12시간 영업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지금처럼 고유가 시대엔 차라리 정부에서 심야 영업을 못하게 규제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고유가가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경제성장률은 1.34%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1.7%포인트 상승한다. 무역수지는 80억9000만달러 악화된다. 중동산 두바이유는 연초에 비해 이미 10달러 가까이 올랐다. 한국처럼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국가에서 에너지를 아끼자는 구호가 지금처럼 절실한 때는 없었다.
정부 기업 가정 모두 똑똑한 꽁생원을 자랑스러워 할 때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석유 소비 규모로 재구성한 세계지도▼
세계 각국의 석유 소비량을 기준으로 세계 지도를 그려봤다. 미국이 기형적으로 크게 나오고 아프리카와 남미는 원래 크기보다 훨씬 쭈그러들었다. 석유 소비 지도에서 한국의 영토는 실제보다 상당히 크게 나온다. 하지만 뿌듯해 할 일은 아니다.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석유 소비량은 하루 230만배럴로 세계 7위다. 미국이 전 세계 소비량의 25.1%로 압도적인 1위이고 이어 중국 일본 독일 러시아 인도 한국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순이다. 한국은 2.9%로 아프리카 전체 소비량(3.3%)에 육박한다. 경제 규모로 보면 한국은 세계 13위인데 석유 소비량은 7위다. 석유가 나지 않는 국가에서 석유 소비가 남들보다 많다는 것은 유가가 조금만 올라도 경제가 휘청거린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