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자료사진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스윙이 있단다. 배워서는 알 수 없는, 타고난 스윙. 살아가면서 잃어버릴 수도 있어. 하지만 그걸 찾아야 해.”
- 영화 ‘베가번스의 전설’에서 베가번스가 꼬마 하디에게 -》
골프를 소재로 한 몇 안되는 영화 중 하나인 ‘베가번스의 전설’(DVD·20세기폭스)은 참 말이 많다. 좌절했다가 재기하려고 몸부림치는 골퍼 주너(맷 데이먼) 앞에 수호천사처럼 나타난 캐디 베가번스(윌 스미스)는 “그립을 보면 사는 태도를 알 수 있다”는 둥 끝없이 주절댄다. 캐디가 저렇게 설교를 늘어놓으면 산만해서 어떻게 공을 칠까 싶다.
이 영화에서 주너의 경쟁상대로 묘사된 보비 존스, 월터 헤이건은 1920년대 말, 타이거 우즈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던 실제 선수들이다. 영화는 이들의 ‘자신만의 스윙’을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준다. 우아한 골퍼 존스는 어려운 건 쉽게 치고, 쉬운 건 더 쉽게 친다. 목표가 분명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헤이건은 대체로 스윙이 볼품없지만 멋진 한 타가 3타 값을 한다는 것을 안다. 남을 얕보고 경박해 보여도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는 승부사다.
그럼 우리의 주인공 주너는?
‘자신만의 스윙’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주너에게 베가번스는 “필드를 공략하려 들지 말고 필드, 우주의 힘과 조화를 이루라. 그리고 순간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베가번스의 ‘가르침’대로 주너가 성공하는 순간을 묘사한 장면은 좀 유치하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내리쬐는 햇빛과 날아오르는 새들을 경이롭게 바라보던 주너가 이윽고 앞을 응시하면 저 먼 곳의 그린이 카메라를 줌인하듯 바짝 다가온다. 그 장면을 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집중하면 도를 깨치듯 그런 경지에 이른다는 걸까. ‘지각을 열어놓되 집중하라’는, 두뇌에겐 다소 무리한 요구를 영성 혹은 정신력으로 해낼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하긴, 이 영화의 원작도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가르침을 골프에 적용한 소설이다.
어쨌거나 주너는 발군의 정신력으로 ‘조화하면서 집중하는’ 능력을 기르지만, 내면의 긴장, 전쟁터에서 겪은 마음의 상처로 계속 흔들린다. 그런 그에게 베가번스가 일갈한다.
“과거의 짐을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오. 길은 두 가지밖에 없어요. 그걸 짊어지고 죽거나. 아니면 다시 시작하거나.”
그러니까 베가번스의 충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집중하라, 과거를 잊고 다시 시작하라. 하나마나한 충고다. 문제는 그렇게 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스윙을 찾을 수 있느냐인데, 그에 대해선 별 말이 없다.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어떤 이들은 ‘나 아닌 것’들을 지워가라고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의 관심을 끄는 미세한 차이에 주목해야 한다고도 한다.
여전히 ‘나만의 스윙’을 찾지 못한 어설픈 골퍼인 내가 보기엔, 방법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게 네 길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은 사실 어떻게 사랑에 빠졌느냐고 묻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 주너를 붙들고 ‘자신만의 스윙’을 설명해 달라고 캐물어도 들을 수 있는 대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느낄 수 있거나, 혹은 느낄 수 없거나.
주너를 흠모하는 꼬마였던 하디는 영화 끝에서 말한다. “필드에서 자기 고유의 자리를 찾을 때까지 그냥 치는 것”이라고. 할아버지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평생 그렇게 살 수도 있다. 그것이 그에겐 ‘자신만의 스윙’일 것이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