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는 16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연설에 대해 "노 대통령 연설에는 미국 정부가 한국의 고위 관리들과 가까운 장래에 토론을 갖기를 바라는 요소들이 있다"고 밝혔다.
외교적 수사(修辭)를 통해 절제된 언어를 사용해 온 국무부가 동맹국 대통령의 연설내용에 대해 공식적으로 '토론 필요성'을 거론했다는 점은 북한 핵문제를 바라보는 한미간 시각차를 분명히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국무부는 이날 노 대통령의 연설 가운데 어느 대목이 토론 대상인지를 적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토론대상이 "핵과 미사일은 외부위협 억제수단이라는 북한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염두에 둔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국무부는 노 대통령이 13일 연설을 한 뒤 15~17일 매일 오후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햇볕정책의 필요성을 누구보다도 공감하는 돈 오버도퍼 존스홉킨스대 교수도 17일 "(대통령의 연설문을 전해 듣고) 깜짝 놀랐다"고 충격을 표시한 것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절제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국무부는 워싱턴 주재 언론사가 특정 사안에 대한 국무부의 견해를 묻는 연락을 해 올 때 공보실에서 미리 작성해 둔 '성명'을 전화로 읽어주는 형식을 취했다.
이런 형식은 19일 열릴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정부간에 '한국 대통령의 연설-미국의 공식 브리핑'이라는 '장외 대결' 형식을 취하지 않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언론사의 질문이 오는 경우라면 한미간 시각차의 존재를 애써 부정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도 묻어난다.
이 성명을 한글로 번역하면 원고지 2장이 조금 넘는 정도로, 글자 수로만 따질 때 한미간 북한 핵 인식이 일치하는 부분이 상당부분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미 정부 고위관계자는 17일 워싱턴 시내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설명회에서 익명을 전제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통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6자회담 참가국 정상들과 한 목소리를 내겠다"고 분명히 했다. 북한의 핵개발은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북한이 전략적 결단을 내릴 경우 정치·경제적 혜택이 크다는 점이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 정상들의 공통 견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오후 3시에 열린 이 행사는 e메일을 통해 당일 아침에 행사 자체가 통보될 정도로 급히 마련됐다. 따라서 '6자회담 참가국의 한 목소리'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 국무부가 전날 공개한 '성명'에서 느껴지는 한미간 온도차는 겉으로 드러난 한미공조 기류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6자회담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워싱턴=김승련특파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