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 핵심 평당원들이 개혁 관철을 주창하면서 세력화에 나섬으로써 당이 안팎으로 대치와 갈등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가보안법 폐지 등 ‘4대 입법’을 둘러싸고 한나라당과 당 정체성을 건 치열한 대치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데다 강경개혁 성향의 평당원 집단과 당내 중도 보수 성향 의원그룹간의 격돌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당 정체성 갈등=이달 하순 잇따라 출범할 예정인 ‘전국 평당원협의회 연대회의(전평련)’와 ‘중단 없는 개혁을 위한 전국 당원연대(중개련)’는 당내 온건파 의원들을 ‘당 정체성 훼손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개혁 정신이 투철하지 않은 일부 의원들이 당원의 뜻과 무관하게 수구보수 세력과 타협하려 하기 때문에 ‘당 주인’인 평당원들이 직접 나서서 통제해야 한다는 게 ‘개혁 전위대’ 결성의 취지.
일부 핵심 당원들은 스스로를 ‘신독립군’으로 부르면서 “일부 인사들의 온건과 합리로 포장된 개혁 후퇴 때문에 당 지도부조차 중심을 못 잡고 갈팡질팡하며 무력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밑에서부터 개혁을 지켜내자”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중개련 결성 움직임이 당내 대표적인 온건파 의원 모임인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이 발족한 이달 초를 전후해 촉발됐다는 점에서 중개련이 이들을 타깃으로 설정했음을 엿볼 수 있다.
당 일각에서는 7월 한나라당 박창달(朴昌達) 의원의 체포 동의안이 부결됐을 때 강경 평당원들 주도로 벌어진 ‘반대투표 의원’ 색출 작업이나 한나라당 출신 보좌진들에 대한 ‘살생부’ 파문 등의 연장선 위에서, 이들 조직이 ‘비개혁적 의원 분리색출’을 본격화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온건파 반발=이 같은 강경개혁파 평당원들의 조직 결성 움직임에 대해 온건파 의원들은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안개모에 참여하고 있는 안영근(安泳根) 의원은 “일부 꼴통 강경파들이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고 해서 헌법기관인 의원들이 휘둘려선 안 된다”며 일축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개혁 추진 방식을 문제 삼아 표적이 된 김부겸(金富謙) 의원은 “그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세력을 타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지만, 개혁은 공존과 설득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세계관이 다른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는 없으니 이대로 가면 한판 붙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출신의 한 재선 의원은 “자칫 의원들마저 이들에게 휘둘려 노선 투쟁에 휘말린다면 최악의 경우 당이 깨질 위험마저 있다”고 우려했다.
안개모의 또 다른 한 의원은 “중개련 주도 세력이야말로 토론과 화합을 내세운 창당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며 “아직도 홍위병 같은 방식이 통한다고 생각한다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파워게임 가능성=일부 온건파 의원들은 평당원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강경개혁파 의원들이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선 의원은 “당에서 온건파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데 대해 조바심을 내고 있는 몇몇 의원들이 평당원 조직화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당을 자꾸 분열로 몰고 가면 나중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중개련과 전평련 결성을 주도하는 핵심 평당원들은 차기 당 지도부를 선출할 내년 3월 전당대회를 겨냥해 당선·낙선 운동을 벌여야 한다고 공언하고 있어 당장 당권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멀게는 2007년 대선까지 겨냥해 ‘상향식 당내 선거’의 표를 갖고 있는 핵심 당원들을 선점하기 위해 강경 개혁파 의원들이 본격 행동에 나선 것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