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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황호택]‘민주화운동 간첩’

입력 | 2004-11-18 18:38:00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은 ‘1969년 8월 7일 이후 권위주의적 통치에 항거해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활동’이라고 ‘민주화운동’을 정의한다. 기산일(起算日)인 1969년 8월 7일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개헌안이 국회에 제출돼 1인 장기집권을 반대하는 운동이 시작된 날이다. 민주화운동 관련자를 보상하는 뜻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문란케 하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역대 권위주의 정권과 싸우며 자기희생을 감수했기 때문이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교도소에서 단식농성을 벌이다 고문당해 사망한 남파 간첩에 대해 명예회복 및 보상신청을 거듭해 논란을 부르고 있다. 과연 남파 간첩이 ‘민주헌정질서의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회복 신장시킨’ 민주화운동 관련자인가. 의문사위는 ‘악법인 사회안전법의 폐지를 요구한 것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시킨 활동’이라는 논리를 편다. 민주화보상위원회가 대한민국을 부정한 대남공작원이라는 이유로 신청을 기각하자 의문사위가 또 재심을 신청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집착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물론 남파간첩이라고 하더라도 사형수도 아닌 장기수형자를 고문해 사망케 한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그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명예회복을 해 주고 보상해 주자는 발상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의문사위가 이렇듯 국민여론과 동떨어진 일을 하는 바람에 의미 있는 다른 활동까지 빛을 바래게 하는 측면이 있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부인하고 국가안전을 위협한 남파간첩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하면 국가는 정체성 혼란에 빠져들게 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정권 안보를 위한 용공조작 사건에 휘말려 사형이 집행됐거나 의문사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의문사위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이러한 죽음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 의문사위의 활동은 여기서 그쳐야 한다. 북한에서 남파돼 자유민주체제를 파괴하기 위해 활동한 사람들까지 민주화 인사로 포장되어서는 안 된다. 자유의 적(敵)에 대한 자유를 허용하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