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속委 예산편성 편법 성행▼
대통령 직속의 위원회가 갈수록 비대해지고 있다. 대통령의 국정과제를 챙기는 자문기구로 출범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현재 실질적인 정책 ‘컨트롤 타워’ 역할까지 맡고 있다.
22개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내년도 예산규모는 2655억5900만원. 올해 예산 914억6800만원의 약 2.9배에 이른다.
이 같은 예산급증에는 광주를 문화중심도시로 만들겠다는 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회의 예산이 931억원 늘고, 중앙인사위원회 예산도 올해보다 843억원 증가한 것이 큰 요인이 됐지만 다른 위원회의 예산 증가액도 만만치 않다.
또 대통령자문기구라는 이유로 위원회 예산을 정부부처에 넘겨 편성하는 ‘편법’도 성행하고 있다. 게다가 자문기구는 정책을 직접 집행하지 않기 때문에 감사원의 감사도 받지 않는다.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최근 “참여정부는 위원회 공화국이 맞다. 일만 잘하면 그만”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부처의 벽을 허물고 통합적 정책을 만들기 위해선 위원회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지만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선 “위원회에 치여 일할 맛이 안 난다”는 푸념이 나온다. 여권 내부에서조차 ‘위원회 공화국’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다. 그 실태를 알아본다.
▼위원회, 힘만큼 효율성 있나▼
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직속 국정과제위원회가 추진하는 일에 각 부처가 적극 협력하라”고 각별히 지시했다.
마침 재외공관장직을 외부 인사에게 개방하는 문제 등을 둘러싸고 외교통상부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마찰을 빚고 있던 때였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이 위원회 정책 추진에 대한 일부 부처의 반발 움직임을 염두에 두고 위원회 쪽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분석이 정부 안팎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실제 대통령 자문기구인 위원회는 부처보다 우월적 지위에서 정책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더 많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다루는 정책은 대부분 노 대통령이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는 사안들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경우 △미래형 혁신도시 △혁신클러스터 조성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등 정부가 추진 중인 국가균형발전 전략의 핵심 사안을 주도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시행 예정인 자치경찰제의 구체적인 시행 방안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맡고 있다. 또 금융감독 체계 개편, 보건복지부가 갖고 있는 보육기능의 여성부 이관 등 정부조직 개편작업도 정부혁신위가 주도해 왔다.
정부혁신위는 또 50여개의 민관합동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정부조직, 공무원 인사제도, 중앙정부 권한의 지방 이양 등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가장 힘센 위원회로 통한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단순히 각종 정책의 ‘로드맵’을 짜는 데 그치지 않고 추진 상황까지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위원회가 사실상 ‘대통령의 뜻’을 내세워 부처 위에 군림하는 옥상옥(屋上屋) 형태의 기구가 된 탓에 정책추진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예를 들어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중심이 된 수도 이전 문제만 하더라도 주무 부처에서 주도권을 쥐고 차분하게 논의했더라면 특별법의 위헌 결정이 나기 전에 충분한 법적인 검토를 하고 정책 추진의 문제점을 짚었을 것이라는 게 관료사회의 대체적인 평가이다.
또 위원회엔 관련 부처 장관들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지만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엔 위원장의 판단이 많이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정책중심에 공무원이 없다▼
정부의 주요 정책이 대통령 직속 위원회 중심으로 추진되면서 정책수립 과정에서 소외된 공무원들이 무력감과 소외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 부처의 한 간부는 “공무원이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업무영역이 갈수록 좁아진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수도 이전 △부동산 세제개편 △국가보안법 폐지 △2008년 이후 대학입시제도 개선안 등 굵직굵직한 정책들은 대부분 대통령 직속 위원회와 열린우리당에서 주도했다.
물론 각 위원회에는 공무원들이 파견돼 있지만 정책의 큰 방향과 흐름은 대체로 비관료 출신인 직속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회 담당 비서관 등이 좌지우지하는 형편이다.
정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위원회가 정책을 주도하다 보니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상적인 정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다고 반대만 할 수도 없어 답답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실제로 관료들 가운데는 위원회가 주도하는 정책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하려 하기보다는 입을 다무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개혁’정책을 섣불리 비판했다가 ‘코드’가 다른 사람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최근 범부처 차원의 회의에 참석했던 경제 부처의 한 고위 간부는 “중요 정책이어서 활발한 토론이 필요했지만 다들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별 얘기가 없었다. 이미 정해진 정책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나도 말문을 닫았다”며 씁쓸해했다.
사회 부처의 한 고위 간부는 “청와대와 여당에서 모든 것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선 공무원들이 소신을 갖고 일하기 어렵다”면서 “일선 과장들까지도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고 관가 분위기를 전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한 관료 출신 의원은 “공무원들이 할 일을 대통령 소속 위원회에서 도맡아 하다 보니 공무원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심하다”면서 “구체적인 정책 집행은 공무원 몫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최경환(崔炅煥) 의원은 “공무원들은 위원회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도록 돼 있다”며 “문제는 위원회의 정책 실패에 대해 마땅히 책임을 물을 방도가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직속 주요 위원회 위원 및 자문위원 현황과 예산위원회위 원자문위원예산(원)정부민간계2004년2005년(안)정책기획위86977―25억1600만22억9200만동북아시대위1114259416억6000만21억 정부혁신지방분권위11172812929억8900만40억800만 국가균형발전위12132518721억7100만32억8900만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1317308928억5500만122억3000만고령화 및 미래사회위1015252613억7400만16억2900만지속가능발전위―7474―13억 16억
빈부격차차별시정위101424―7억6000만15억6300만농어업농어촌특별대책위622288211억7800만11억8600만문화중심도시조성위14163030100억 1031억900만 중소기업특별위131124―18억5100만22억4200만지방이양추진위51419―3600만2억7500만위원 수는 2004년 9월초 기준. (자료:한나라당 최경환 안명옥 의원,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공종식기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