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엑스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오른쪽부터 시계방향). 미국의 싸구려 잡지들에서 태어난 이들이 전 세계 대중문화의 영웅으로 떠오른 이유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과학적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슈퍼영웅의 과학/로이스 그레시 등 지음 이한음 옮김/298쪽 1만2000원 한승
‘슈퍼맨’은 과연 얼마나 강력한가? “1938년 미국의 싸구려 ‘펄프 잡지’ 세계에 얼굴을 처음 내밀 때는 아무도 그를 몰랐지만 2년 후 ‘슈퍼맨’이 연재되던 ‘액션 코믹스’가 100만부나 팔릴 만큼.”
또 다른 대답은 1938년에 나온 ‘액션 코믹스’의 한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20층 건물을 뛰어 넘고 급행열차보다 빠르다. 포탄도 그를 못 뚫는다.”
‘슈퍼맨’이 장기 연재로 들어가자 독자들의 희망에 따라 이런 괴력도 진화를 거듭한다. “빛보다 빨리 날고 행성까지 들어서 움직인다.” 결국 1960년대가 되자 “나 참, 도대체 슈퍼맨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요인을 찾을 수가 있어야지”하는 비명이 만화가들로부터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서 그 뒤의 이야기들은 이상한 마법이나 ‘슈퍼맨’의 능력을 떨어뜨리는 기이한 이야기로 흐르게 됐다.
그러면 1960년대 이전에 ‘슈퍼맨’ 만화의 근간을 이룬 ‘엄정한’(?) 과학의 관점에서 그의 능력은 어디에서 온 것으로 설명됐을까. 만화에 따르면 “슈퍼맨은 크립톤 행성에서 찾아왔다. 거기 주민들이 완벽한 신체로 진화한 데다 거긴 지구보다 중력이 훨씬 강하다. 이 때문에 지구에 온 슈퍼맨은 아무렇지도 않게 괴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쟁쟁한 과학소설가인 지은이들이 쓴 이 책은 미국 대중문화를 휩쓸어 온 만화 주인공 12명의 ‘슈퍼 파워’가 실제 가능한지 과학적으로 따져 보고 있다. 이들 주인공이 지상에 나타나게 된 경위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그럼 이들은 슈퍼맨의 괴력이 과연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을까. 슈퍼맨의 몸무게는 100kg쯤으로 보인다. 운동선수들은 보통 자기 몸무게만큼은 들어올리는데 ‘초기’의 슈퍼맨은 이들보다 1000배쯤 힘이 센 것으로 보인다(그는 DC-9 항공기 비슷한 것을 들어올리는데 이는 10만kg 정도 된다). 그러려면 크립톤 행성의 중력은 지구보다 1000배 정도 강해야 한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보통 지구 중력의 50배 정도인 행성에서도 고체 물질이 형성될 수 없을 지경이다. 게다가 슈퍼맨은 우주선을 타고 크립톤을 떠나 왔는데 이 행성의 탈출 속도를 계산해보면 초속 1만1000km, 빛의 속도의 30분의 1이다. 우주의 화학반응 가운데 그런 속도를 뒷받침할 만한 에너지를 내는 것은, 불행히도 없다.
슈퍼맨이나 배트맨, 헐크, 스파이더맨, 앤트맨, 엑스맨은 그 재미를 ‘구전(口傳)’시킨다는 점에서 코카콜라나 감자칩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엄정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을까. 지은이들에 따르면 ‘있다’. 이들이 탄생하게 된 시기가 미국 과학의 빛나는 발전기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만화’에서조차도 나름대로 과학적 설명이 있었다. 그 설명이 그럴듯할수록 더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의 독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이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기독교 창조론의 갈등, 복제양 돌리를 둘러싼 유전공학과 돌연변이 같은 현대 과학의 굵직한 성취나 테마를 팝콘 먹듯이 ‘갖고 놀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작 이런 주인공들을 만들어 낸 만화가들은 생각지도 못했을 깊이로까지 파고들어가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지은이들의 박학과 열정에 깔깔거리면서.
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