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의학, 그 위대한 도전의 역사/예병일 지음/336쪽 1만5000원 사이언스북스
엘리 메치니코프(1845∼1916)는 모 식품회사의 요구르트 때문에 일반인에게 잘 알려진 러시아계 유대인 생리학자다. 그 제품의 TV광고를 보면 메치니코프는 불가리아의 장수마을 사람들이 자주 마신다는 유산음료에 들어간 유산균을 배양한 사람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그는 식세포가 인체에 침입한 물체를 잡아먹는 면역반응, 즉 세포성 면역을 처음 발견해 1908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았다. 물론 노년에는 노화연구에 헌신하며 락토바킬루스 불가리쿠스라는 균을 자주 배양해 마시긴 했다.
1901년 첫 노벨상이 수여된 뒤 지금까지 103년 동안 노벨 의학생리학상의 역사는 곧 과거 한때 인류를 거의 절망에 빠뜨렸던 질병에 대한 소수 선구자들의 투쟁의 역사였다. 그것은 바로 현대 의학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이 책은 노벨 의학생리학상 수상자들을 8개 범주로 묶어 수상 업적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그들이 쏟아 부었던 노력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노력에는 행운도 따랐고 상을 받지 못할 뻔한 불운도 있었다.
페니실린을 발견해 1945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알렉산더 플레밍에게는 행운이 연이어 작용했다. 그의 배양액을 오염시킨 곰팡이는 다름 아닌 아래층 실험실에서 알레르기 백신의 제조 연구에 이용됐던 것이다. 또 휴가 중인 플레밍이 배양 용기를 배양기에 넣지 않고 실험대 위에 그대로 놓아 뒀기 때문에 곰팡이에 오염됐고 그래서 그의 발견 또한 가능했다. 이것 말고도 대여섯 번의 행운이 뒤따랐다.
반면 결핵균 치료제인 스트렙토마이신을 발견해 1952년 노벨 의학생리학상을 받은 셀먼 왁스먼은 세 차례나 더 일찍 그 물질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놓쳐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행운이나 불운이 인류에 대한 그들의 숭고한 업적을 가리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이 발견한 병원균, 항생물질, 치료제는 5000년 전부터 수억 인류의 목숨을 앗아갔던 말라리아, 디프테리아, 페스트, 천연두, 매독, 한센병, 결핵 등을 막아 내거나 최소한 세계 전체로 번지는 것을 예방했다.
20세기 초반에는 세균, 바이러스, 면역, 백신 등 감염성 질병에 대한 대응 노력에 노벨 의학생리학상이 집중됐다면 후반기에 접어들어서는 암에 대한 투쟁에 초점을 맞춘다.
20세기 100년간 암과 관련된 연구로 이 상이 주어진 것은 모두 네 차례였다. 한 가지 주제에 무려 네 번씩이나 노벨상이 수여된 것은 기록적인 일이지만 그럼에도 아직 암이 불치병이라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라고 저자는 탄식한다.
책의 나머지 2장은 지난 몇 년간 세계를 흔들어 놓은 생명복제와 인간유전체 계획(Human Genome Project)에 할애됐다.
저자는 이 두 분야에서 앞으로 노벨 의학생리학상 수상자가 나올 것으로 확신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연구가 앞으로 인류의 건강과 행복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한다.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