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행복이 얼마나 갈지는 두고 봐야 안다. 세계 유일 강국의 외교사령관이지만 외교철학이나 능력보다는 대통령과 친해서 발탁된 흑인 독신여성이라고 더 먼저 널리 퍼져서다. 외교란 특히 정복 독립 파워 등 남성적 가치로 평가되는 영역이다. 실세 부통령과 국방장관이 ‘베이비’라 불러 왔다니, 제 목소리 내기는 고사하고 여자 망신 대표로 시키는 건 아닐지 쓸데없이 걱정된다.
▼라이스, 그 ‘逆說의 리더십’▼
권력의 속성에 정통한 이들은 진정한 권력이란 선약 없이도 대통령을 만날 수 있는 접근성에서 나온다고 한다. 이 점에선 라이스를 따를 자가 흔치 않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일하는 여자에게 지워진 치명적 약점을 이겨 낸 연구 대상이다.
1995년 보고서지만 유엔개발계획(UNDP)은 “여자가 남자와 똑같은 기회를 누리는 사회는 없다”고 했다. 아무리 여성 경제참여인구가 남자와 맞먹고 인권 및 여권주의자들이 ‘남녀는 동등하다’고 외친대도, 여자는 남자보다 덜 유능하며 리더의 자질이 덜하다고 간주되는 게 현실이다. 높은 자리일수록 여자가 적은 것도 세계 공통이다.
전문가들은 이럴 수밖에 없는 큰 이유로 네트워킹을 지목한다. 머릿수에서 남자에게 밀리는 직장인 한, 여자는 ‘왕따’가 아니래도 핵심 내부집단에 끼기 힘들다. ‘정치적 능력’이 선천적 후천적으로 뒤지는 데다 남자들과 공통된 끈끈함도 없어서다. 그런데 라이스는 부시 대통령의 유능한 가정교사였다는 천운으로 식구 같은 지위에까지 올라섰다.
이는 라이스가 독신이어서 가능했다. 실제로 여자는 직장에서 오래 일하고 돈도 잘 벌수록 결혼 기회가 줄어든다는 미시간대의 슬픈 조사결과가 있다. 결혼을 해도 일에서 성공할수록 이혼 가능성은 높아진다. 남자와 정반대다. 좋은 엄마는커녕 아이 낳을 확률도 떨어진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결혼생활을 계속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다”고 했을 정도다. 결혼이나 이혼, 양육 부담이 없는 라이스는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라이스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이미지다. 지난달 영국의 BBC라디오는 이미지에 따라 일하는 여성을 네 부류로 소개했다. 성실하기만 한 ‘안 뵈는 여자’, 남자처럼 일하는 ‘녀석(guy)’, 능력보다 여자다움이 앞선 ‘기생(geisha)’, 그리고 일은 잘하지만 여자답지 못해 밥맛없는 ‘비치(bitch·번역 안 합니다)’다. 라이스는 “국익과 무력이 중요하다”는 강경함과 바흐를 좋아하는 데서 드러나는 침착한 성격, 여기에 커피 잔 정리하는 여성성마저 갖췄으니 이쁘기 그지없다. 물론 국무장관으로 성공할지는 논외 문제다.
이렇게 되면 평범한 여자가 살기는 더 고달파지게 생겼다. 모든 여자가 라이스처럼 될 수는 없다. 자아실현 같은 고상한 목표가 없더라도 남편 혼자 벌어 자식 키우긴 점점 힘든 세상이다. 집안일과 직장일 둘 다 완벽한 슈퍼우먼이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 둘을 조화시키는 것 역시 협력적 자주국방만큼 난해하다.
여자가 보스든 비서든, 잘하면 잘해서, 못하면 못해서, 어느 쪽에선가 욕먹기 마련이므로 신경 쓰지 말라는 전략도 그래서 나온다. 여자라서 행복한 유일한 점은 잘못됐을 때 변명거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여자이니까” 하고.
▼개인 능력으로 평가하라▼
여자에게 능력이 있느냐, 리더가 될 자질이 있느냐는 질문은 이제 무의미하다. 이 문제는 남자의 경우와 똑같이 여자도 일부는 능력이 있고 일부는 없다는 해답으로 과학적 해결이 된 지 오래다. 남녀에 관한 고정관념이 끈질기다고 해서 정부가 쿼터제 등으로 간섭하는 건 반갑지 않다. 어떤 운동도 싫어하는 나로서는 남녀차별폐지운동 또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건 시장경제 원칙이다. 조직이 잘되기를 원하는 최고경영자라면 남자든 여자든 꼭 필요한 사람을 쓸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망할 것이 분명한 그 조직에 대해 남이 상관할 바 아니기 때문이다. 단 남녀간 자유경쟁은 보장돼야 한다. 여자라서 행복한 사회는 여자라서 불행한 사회만큼이나 불공정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