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 브로커’라는 신종 직업을 아십니까.
새로 입주한 아파트를 무대로 활약하는 ‘준(準)사기꾼’을 일컫습니다. 최근 건설업체 분양소장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이들의 특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들은 우선 입주가 막 시작된 아파트를 구입한 뒤 ‘×××연구소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뿌리며 입주민들에게 열심히 얼굴을 알립니다. 입주자 대표회의에서는 일부러 약간 무능해 보이는 사람이 ‘초대 대표회의 의장’으로 뽑히도록 바람을 잡습니다.
주민들은 이런저런 민원사항을 의장을 통해 요청하게 됩니다. 그러나 초대 의장은 아무래도 일처리가 미숙합니다. 브로커는 뒤에서 군시렁 군시렁 잔소리를 하다 어느날 ‘칼’을 뽑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아파트의 발전을 위해 제가 의장을 맡겠습니다”라고 큰소리를 치는 거죠.
가뜩이나 하자보수 문제로 짜증이 나던 주민들은 새로운 의장을 박수로 환영합니다. ‘신임 의장’은 다음날부터 도면을 들고 하나하나 하자들을 체크합니다.
“천장높이가 도면보다 5cm나 낮으니 재시공을 하라” “변상의 의미로 벽걸이 TV를 입주민들에게 하나씩 돌려라”는 등 상상가능한 모든 요구사항을 들고 시공사를 압박합니다.
관리사무소에 들러서는 ‘영수증 목록’을 보자고 합니다. 식당이나 술집 이름이 적힌 영수증을 보면 다짜고짜 “주민 관리비로 이렇게 비싼 회식을 하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큰소리를 칩니다.
이들은 어느새 아파트의 ‘실세(實勢)’가 됩니다. 인테리어·새시 업자들과 상가 점포 주인들도 ‘신임 의장’에게 로비를 합니다. 공사 소개비, 엘리베이터 내부와 단지 게시판 광고료 명목으로 건당 5만∼10만원씩을 상납하는 거죠.
브로커들은 시공사를 압박해 수시로 ‘거마비’를 뜯는 것은 물론 무료로 자신의 집 개·보수를 끝내고 실내 비품까지 고급 사양으로 교체합니다. 그 덕분에 집을 팔 때도 시세보다 2000만원쯤은 더 받게 되죠. 건설업체 분양소장들은 “이런 식으로 1년에 3, 4회 정도 움직이면 1억원 버는 것도 쉽다”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조인직 경제부기자 cij19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