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대 기자
“저기요. 그냥 한번만 봐주실래요? 예? 안 봐요? 아∼ 한번 보쇼.”
12월 3일 개봉하는 영화 ‘까불지마’ 예고편에 나오는 주연배우이자 감독 오지명(65·사진)의 말이다. 주변 머리는 박박 밀고 가운데 부분만 남겨놓은 ‘호나우두’ 헤어스타일에 특유의 더듬거림이 이어지자 객석에서는 ‘끅 끅 끅’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진다.
연기 경력 45년, 예순다섯 나이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그를 19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영화는 동료 동팔(김학철)의 배반으로 15년을 감옥에서 보낸 개떡(오지명) 벽돌(최불암)과 두 사람을 옥바라지한 삼복(노주현) 등 조폭 3인방의 인생 유전을 그린 액션 드라마. 세 사람은 복수를 꿈꾸지만 막상 동팔이 감옥에 갇히자 그의 딸 은지(임유진)를 경호하는 보디가드가 된다.
―영화제목이 왜 ‘까불지마’인가.
“시트콤 작가 3명에게 ‘숙제’를 줬더니 제목이 60개 들어왔어. 그중에서 고른 거야. 마침 열린우리당 ‘정 머시기’는 60대 이상은 투표하지 말라고 하지, ‘유 머시기’는 젊은 사람과 노인의 뇌세포가 다르다고 하지…. 이런 말에 한참 열을 받다가 제목을 정했어. 한마디로 늙은이들 무시하지 말고 까불지 말라 이거지. 나도 감독한다고 까불었다는 생각이 들어. 감독이 배우보다 훨씬 힘들어.”
―최불암 노주현씨를 캐스팅한 이유는….
“(최)불암이는 동갑이고 어려서부터 잘 알아. 한국인의 아버지상이라거나 국민배우라는 둥 포장이 잘돼 있지. 이런 이미지를 뒤집고 싶었어. 그러면 웃기는 거지. 주현이는 몇 살 아래인데 불암이나 나처럼 울퉁불퉁하지 않고 예쁘게 생겼잖아. 관객들이 보기 좀 편하라고.”
―왜 뒤늦게 감독 데뷔를 했나.
“처음엔 제작만 하려고 했지. 그런데 시나리오를 본 강우석 감독과 ‘씨네 2000’의 이춘연 대표가 얘기가 재밌는데 배우가 제작해 성공한 전례가 없다고 말리는 거야. 그러다 투자를 맡은 회사에서 내가 옛날에 시나리오 공모에도 당선됐고 시트콤 기획도 많이 했으니 직접 연출하라는 거야. 내가 안 하면 영화를 포기하겠다는데 어떡해.”
―목욕탕 신에서 보니 배에 ‘임금 왕(王)자’가 새겨진다. 60대 몸짱이다.
“소싯적에 운동 좀 했지. 그때 운동하던 ‘찌꺼기’가 조금 남아 있어.”
그는 젊은 팬에게 ‘오박사네 사람들’ ‘순풍산부인과’ 등을 통해 ‘시트콤의 대부’나 코미디언쯤으로 알려져 있지만 50여편의 연극에 출연했고 1960, 70년대에 150여편의 영화를 찍은 액션 배우다.
―어떻게 시트콤을 하게 됐나.
“1992년 당시 SBS 부국장이던 이남기씨(현재 SBS 제작본부장)가 왜 시트콤을 안 하느냐며 전화를 했어. 대본을 하나 주는데 재미없더라. 그래서 당시 잘나가던 작가 (김)운경이에게 미국 시트콤 ‘코스비’ 가족을 베껴 두 회분만 써 달라고 했지. 자기 체면에 베끼면 끝장이라는데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여 비슷한 걸 결국 받아냈어. 이 시트콤이 제대로 자리 잡아 화제가 됐지.”
―시트콤 분위기와 달리 웃음이 거의 없는 편이다. 웃음은 뭐라고 생각하나.
“사는 것 자체가 코미디지. 그리고 내가 사는 것 자체가 코미디니 그대로 보여주면 돼. 난 코미디언이라는 말이 듣기 싫은 게 아니라 영광스럽게 느껴져.”
―감독 데뷔 소감은….
“대학에서 경제학과를 다녔는데 당시 최고 직장이 은행이고 월급이 8000원쯤 됐어. 은행원보다는 배우가 낫다고 생각했어. 지금 생각해도 잘 결정했지. 그런데 연기하면서 살아온 40여년보다 감독하면서 지낸 4∼5개월 동안 인생공부를 더 많이 했어. 감독이란 직업을 다시 보고, 배우란 직업도 다시 봤어. 내가 다시 연출할 기회가 있을까?”(웃음)
15세 이상 관람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