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노을이 고즈넉하게 질 무렵 북한산 산길에 오르는 시인들. 아침저녁으로 마주 대하는 북한산은 이들에게는 시의 원천이자 생명의 고향이다. 왼쪽부터 박흥순 홍해리 이인평 임보 채희문씨.-강병기기자
우이동 사람들은
이마에 별을 꽂고 달을 품고 산다
때로는 나무들과 손잡고
불꽃놀이를 벌이고,
…
한겨울이면 소주를 털어 넣고
야트막한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인 작은 집들.
서로 모르는 사람도 마주치면 금세 반가운 말이 튀어나올 것 같은 정겨움.
개 짖는 소리가 한가로움을 더하고 ‘시인’은 자연을 노래한다.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 솔밭공원 일대.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시인들이 모여 사는 곳.
시 동호회인 ‘우이시회(牛耳詩會·회장 홍해리·63)’가 20여 년 전 태동해 뿌리를 내린 곳이다. 처음 4, 5명이 시작한 ‘우이시회’의 회원은 현재 60여명. 후원회원도 70여명이나 된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쌍문동, 우이동, 방학동 등으로 나뉘지만 지리적으로는 길하나 건너 사이. 스스로 ‘우이동 시인’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마음의 고향이 바로 ‘우이동’이다.
○시인의 마을
우이시회가 처음 생긴 것은 1986년. 홍해리, 이생진, 채희문, 임보, 박희진 시인 등이 주축이 돼 ‘우이시동인’이라는 책자를 내면서 시작됐다.
“서로 잡지나 시를 통해서 이름은 알고 있었죠. 어느 날 시인 주소록을 보니 의외로 아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모인 김에 모임을 만들었죠.”
홍 회장은 “길하나 건너, 소리를 지르면 들릴 정도로 이웃에 살고 있었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씩 늘기 시작한 회원 상당수가 동네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의 시인 이생진씨(76)는 한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었지만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견딜 수가 있어야지…. 이 동네의 정겨움, 북한산…. 결국 다시 오고 말았어. 돌아오지 않았다면 살던 집이야 값이 꽤 뛰었겠지만 어떻게 해. 북한산을 가져갈 수가 없으니….”
홍회장은 “글 쓰는 사람은 마음이 편해야 한다”며 “항상 시골 같고 언제나 부담 없이 올라갈 수 있는 산이 있는 이곳이 글 쓰는 데는 최고의 동네”라고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강남이나 마포 등 다른 곳에 살고 있는 젊은 회원들도 우이동을 동경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대부분 생업 때문에 이사를 오고 싶어도 쉽지는 않다.
회원 중 가장 젊은 김민형씨(37)는 “우이동에 살지는 않지만 나의 시의 고향은 우이동”이라며 “20∼30년씩 사신 어른들의 맑고 순수한 모습과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시회 활동은 크게 정기적인 시낭송회(매달 마지막주 토요일)와 시지(월간)를 내는 것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봄, 가을로 북한산 도선사 앞 공터에서 시화제를 열고 있다.
도선사 앞 공터는 우이시회 회원들이 복숭아나무 50여 그루를 직접 심은 곳. 매년 봄이면 이곳은 복숭아꽃이 장관을 이뤄 시인들은 ‘우이도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내 사랑 우이동
이들의 작품 대부분이 우이동이나 북한산에 관한 것 들이다. 제목으로도 쉽게 알 수 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찬찬히 읽어보면 이 동네의 정겨움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들이 많다. 모두가 바로 옆에서 보고, 듣고, 만지는 대상들이다.
시의 모태가 ‘우이동’과 ‘북한산’이다보니 자연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봄, 가을로 열리는 시화제에는 반드시 천지신명에게 제를 올리고 축문을 읊는다. 생명의 젖줄인 자연에 대한 예찬과 그것을 파괴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내용.
이달 초 가을 단풍 시화제에서는 ‘인간세인 탐욕으로 물고 뜯고 헐고 찢어/산수 자연 황폐하고/기는 짐승 나는 짐승 초목군생 다 시드네’라는 내용의 축문을 읽었다.
몇 년 전에는 인근 방학동 연산군묘 앞에 있는 800년 된 은행나무가 베일 위기에 처했을 때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은행나무 살리기 대동제, 촛불 시위 등을 벌여 지켜내기도 했다.
또 매달 서울 도봉구 쌍문동 도봉도서관에서 열리는 시낭송회는 이제 도봉도서관의 주요행사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서는 단지 시만 낭송하는 것이 아니라 국악, 전통무용 등을 하는 예술인들이 함께 참여해 국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독주회를 갖기도 한다.
일반인들이 직접 쓴 시를 갖고 와 낭송할 수 있고 시낭송회 전에는 시란 무엇인가에 관해 토론하고 강의하는 시간도 있다.
요즘에는 시낭송회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보람이다. 교사들의 인솔 아래 찾아온 학생들은 이곳에서 시의 소리를 듣고, 시인의 냄새를 맡으며 문학의 향기에 젖어들곤 한다.
“예전에는 시가 시인들의 것이 아니라 생활의 일부분이었지. 기쁘면 시를 읊고, 친구를 만나도 한 수 읊고…. 세상이 변하면서 시가 멀어지고 점점 더 각박해지는 것 같아….”
임보씨는 “학교에서는 문제를 풀기 위해 시를 뜯고 해체하는 공부만 가르치다보니 진정한 시의 아름다움을 느낄 여지가 없다”며 “학생들이 시의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보다 나은 정서 교육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詩란 나를 만드는 과정
세상이 하도 빨리 변하다 보니 ‘느림’과 관련된 것들은 밀려나는 세상. 시도 그러하다.
그런데 그들은 왜 ‘시’를 고집할까. 단지 ‘시인’이라서?
“시를 왜 쓰냐고? 어떤 시를 쓰든지 결국은 내 이야기가 되더라고. 옛날에 썼던 시와 지금을 비교하면 나 자신이 많이 변하고 자라고 만들어졌다고 생각해. 결국 시란, 또 시를 쓰는 것은 공부하는 것이고 나를 만드는 과정이지.”
이생진씨는 “그래서인지 시인들은 각자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대상에 몰입하고 찾아다니는 경우가 많다”며 “분야도 대상도 각기 다르다”고 말했다.
이씨는 ‘섬’에 관심이 많다. 대략 지금까지 국내에 있는 2000여개의 섬을 다녔을 정도. 한달에 일주일 정도는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는 이러한 애정의 산물. 2001년 제주도에서 명예도민증까지 받았다.
회원 중에는 소나무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고 수석이나, 영화에 ‘미친’ 사람도 있다. 이러한 애정은 그대로 시에 녹아난다.
“시도 미쳐보면 재미있어. 하하하.”
등단을 한 시인들이지만 대부분은 다른 직업을 갖고 시작 활동을 하고 있다. 전업 시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이미 현직을 떠난 사람들. 이씨도, 홍 회장도 교사 생활을 하면서 시 활동을 했다.
홍 회장은 “젊었을 적에도 정신적인 직업은 시인이었고 부업이 일이었다”며 “천상 시인들”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들은 “우이시회의 모태인 자연과 생명이 잘 보존된 곳이 우이동”이라며 “우이시회를 통해 한국시의 정체성을 찾고 보다 많은 대중에게 시의 아름다움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라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