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가 1999년 2월 삼성그룹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장남 재용(在鎔·36)씨 등 특수관계인 6명에게 자사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에 판 행위에 대해 국세청이 ‘증여’로 간주해 443억여원의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정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로 일부 대기업의 경영권 승계에도 비상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대기업 오너 일가는 회사 소유의 비상장 주식 등을 저평가해 2, 3세에게 헐값 매각하는 방법으로 경영권을 넘기는 것이 관행이었으며 이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제동을 건 것이다.
▼증여세 판결 내용-의미▼
▽판결 내용과 쟁점=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부장판사 권순일·權純一)는 25일 재용씨 등이 서울 용산세무서 등을 상대로 제기한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큰 쟁점은 당시 비상장 회사였던 삼성SDS 주식의 실제 가치를 얼마로 평가하느냐는 것. 1999년 당시 재용씨 등은 이 회사의 주식을 살 수 있는 권리를 주당 7150원에 취득했다. 삼성SDS는 BW 발행에 앞서 삼일회계법인에 의뢰한 주식평가보고서를 토대로 주당 가액을 6490∼7139원으로 산출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세청은 당시 이 주식의 장외시장 거래가격이 5만5000원이었으므로 차액분을 증여로 본 것.
재판부는 이날 “주식이 장외시장에서 거래됐더라도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거래를 통해 객관적인 가치를 반영했다면 ‘시가’로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건 흐름=참여연대는 1999년 11월 “삼성SDS 이사들이 BW를 헐값 발행함으로써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면서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으나 검찰은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반발해 참여연대는 헌법소원을 냈으나 역시 기각됐다.
참여연대는 2000년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공정거래법 위반)로 삼성SDS를 고발했고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SDS에 158억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국세청도 2001년 재용씨 등에 대해 당초 570억원의 증여세를 부과했고 최종적으로 443억여원으로 감액됐다.
이에 삼성측은 곧바로 공정위 과징금 부과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해 올해 9월 대법원에서 승소, 과징금이 취소됐다. 그러나 지난해 5월에 제기한 증여세 소송은 이날 삼성의 패배로 끝났다.
한편 이번 사건은 1996년 11월 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재용씨 남매에게 주당 7700원에 배정해 배임 혐의로 삼성그룹 임원들이 불구속 기소된 사건과도 떼놓고 볼 수 없다.
당시 에버랜드의 주가는 8만5000원을 상회했다. 이번에 법원이 삼성SDS BW 발행과 인수 과정을 ‘변칙 증여’로 해석함으로써 삼성측으로선 에버랜드 CB 소송에 대해서도 안심하기 어렵게 됐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신주인수권부사채(BW·Bond with Warrants):
회사채의 일종. 회사채 발행회사의 신주를 약정된 가격에 일정한 수만큼 살 수 있는 권리가 첨부돼 있다. 채권 소지자는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갈 경우 회사측에 신주 발행을 청구할 수 있다. 한편 전환사채(CB)란 일정기간이 경과한 뒤 주식으로 바꿀 수 있는 권리가 붙은 회사채. 주가가 낮으면 회사채로 보유하고 주가가 오르면 전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