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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196℃서 혈액 결빙막는 물질…남극 돌말서 찾았다

입력 | 2004-11-25 19:47:00

남극에 살고 있는 미세 조류의 일종인 돌말. 개체(세포) 하나하나가 여러 개 연결돼 늘어서 있는 모습이다. 돌말이 분비하는 결빙방지물질이 인체 냉동보관 분야에 활용될 전망이다. -사진제공 극지연구소


병원에서 수혈을 하기 위해 평소 혈액은 냉동 보관된다. 하지만 혈액세포 입장에서 얼렸다 녹이는 과정은 상당한 스트레스다. 얼음결정이 세포 내 주요 기관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연구진이 혈액을 효율적으로 냉동 보관할 수 있는 신물질을 찾아냈다. 화제의 주인공은 남극산 미세 조류(algae)인 ‘호냉성’ 돌말이다. 돌말은 규소 성분의 딱딱한 껍데기로 몸을 무장한 단세포 생물. 길이가 머리카락 지름보다 짧은 5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다.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의 강성호 박사 연구팀은 25일 남극의 해빙 속에 사는 호냉성 돌말이 강력한 결빙방지물질(단백질)을 분비한다는 점을 밝혀 저온생물학회지(CryoLetters) 최근호에 논문을 게재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남극의 겨울(6∼9월)에 바다가 얼기 시작할 때 다른 조류들은 얼어 죽는데 유독 호냉성 돌말은 여름(11∼2월)까지 살아남는 점에 주목했다. 조사 결과 이 돌말은 주변 얼음에 결빙방지물질을 분비하고 그 보호막 안에서 ‘아늑하게’ 겨울을 나고 있었다.

강 박사는 “이 물질은 기존의 혈액냉동물질보다 기능이 훨씬 뛰어나다”고 말했다.

보통 혈액을 보관할 때 영하 196도까지 온도를 떨어뜨린다. 이때 세포 안의 수분이 얼음결정을 이루지 못하도록 글리세롤을 투여한다. 그런데 글리세롤에 돌말의 결빙방지물질을 첨가하자 혈액세포를 얼리고 녹일 때 온전히 보존되는 비율이 95%나 증가했다.

강 박사는 “그동안 남극산 물고기의 피에서 천연 결빙방지물질을 찾은 적은 있었지만 조류에서 발견하기는 처음”이라며 “물고기는 수가 한정돼 있어 추출물이 1g에 1200만원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돌말은 세포 하나로 이뤄져 있어 얼마든지 배양이 가능해 훨씬 저렴한 물질을 얻을 수 있다.

강 박사는 “이번에 발견한 물질은 혈액뿐 아니라 정자 난자 배아 제대혈 등 냉동이 필요한 생식의학 분야에도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며 “해양수산부 극지생물활용연구 사업의 지원으로 연구를 확대해 다양한 특성의 신물질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