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시속 302.4km를 기록한 수소연료 경주차량. 기존 가솔린 엔진을 변형한 후 수소연료를 분사해 연소시키는 방식이다. -사진제공 BMW
《2010년 어느 날 L씨는 자신의 차를 점검 받기 위해 자동차 정비소로 향한다. 목적지까지 차량항법장치의 도움을 받는 것은 기본이고 번거로운 주차도 버튼 하나면 해결된다. 정비소에서는 아직 한번도 뜯어보지 못한 최신 모델이지만 가상현실에서 펼쳐지는 지시 화면의 도움을 받아 능숙하게 점검을 진행한다. 점검 결과 별 이상이 없어 돌아오는 길에 수소 충전소에 들러 청정연료를 가득 채운다. 16일부터 2박3일간 독일 뮌헨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렸던 세계적 자동차회사 BMW의 신기술 전시행사 ‘이노베이션 데이’가 보여주는 자동차의 가까운 미래 모습이다.》
○백미러 자동으로 접히는 똑똑한 기능
전시장 한쪽에서 전자장비에 연결돼 있던 자동차 백미러가 갑자기 획 접힌다. ‘BMW 자동차 IT’사의 사장인 울리히 바인만 박사는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차의 속도가 0이 되는 것을 알아차려 백미러를 접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운전자가 손 하나 까닥할 필요가 없어 최근 BMW나 도요타에서 선보인 자동 주차 시스템에 어울릴 만한 기술이다. 자동 주차 시스템이 센서를 통해 주차할 공간이 충분한지 파악하고 스스로 정확한 각도를 측정해 전기모터로 핸들을 돌려 주차하면 그 다음에 이 시스템이 백미러를 자동으로 접는 것이다.
자동으로 접히는 백미러. 소프트웨어 시스템이 차량의 속도가 0이 되는 걸 알아채 스스로 백미러를 접는다.
바인만 박사는 “현재 자동차 기술 가운데 약 40%는 전자부품이나 소프트웨어에서 나온다”며 “BMW는 차량 내 전자장치를 제어하고 운전자의 길잡이가 돼 주는 ‘차량 중앙제어장치’를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자동차에 이동식 컴퓨터가 한대씩 들어앉는 셈이다.
○바느질 땀까지 구현하는 가상현실
특수 안경을 쓰자 화면에 있던 자동차가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것처럼 보인다. 가상현실스튜디오의 책임자 휴만 라메자니는 “자동차를 가상으로 구현할 때 밝기나 명암 대비뿐 아니라 해상도가 결정적”이라며 “가로 7m, 세로 2.4m의 스크린은 가죽 의자의 바느질 땀에서 앞 유리에 반사된 모습까지 정확하게 표현할 정도”라고 강조했다.
가상현실은 부품 개발에서부터 자동차를 제작하는 생산라인의 모든 과정까지 구현할 수 있다. 차의 모양, 디자인, 색깔 등을 가상공간에서 바꿔 볼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에도 투스카니 이후의 자동차를 가상현실센터에서 설계하고 있다.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면 라디오 채널이 다음으로 바뀐다. 차량 천장에 설치된 두 대의 카메라가 손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진제공 BMW
○연료는 청정에너지 수소
청정에너지라고 쓰여 있는 자동차는 놀랍게도 9월 19일 프랑스 미라마스 시험장에서 최고 시속 300km가 넘는 속도를 기록한 수소 자동차였다. 세계 최초의 수소연료 경주차량인 셈.
BMW의 볼프강 슈트로블 박사는 “기존 가솔린 엔진을 기초로 엔진의 연료 분사시스템을 수소연료에 맞게 변형했다”며 “영하 250도까지 냉각시킨 액화 수소를 미세노즐을 통해 분사함으로써 연소시키는 원리”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동안 연료전지를 바탕으로 개발돼 왔던 수소 자동차와는 다른 방식이다. 연료전지는 수소 연료를 산소와 반응시켜 전기를 생산하는 일종의 발전기다.
과학기술부 수소에너지 제조·저장·이용기술 개발사업단의 김종원 박사는 “수소 연료는 기존 연료보다 효율이 높고 환경 친화적”이라며 “연료전지 방식은 순간 가속 능력이 다소 떨어지는 반면, 기존 엔진 방식을 이용하면 수소 자동차로도 속도감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수소연료 연소방식은 청정연료로 속도감을 즐기는 일석이조의 장점을 가진 셈이다.
뮌헨·잘츠부르크=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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