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한 기자
한국 스페인어문학회 회장이자 세계 세르반테스학회에서 활동 중인 한국외국어대 스페인어학과 박철 교수(53)가 ‘돈키호테’ 1편(731쪽·1만6000원·시공사)을 완역했다. ‘돈키호테’는 시대에 뒤떨어진 기사 돈키호테와 그의 시종 산초 판자, 애마 로시난테가 벌이는 좌충우돌 이야기다.
그동안 출간되었던 ‘돈키호테’는 일본어판이나 영어판을 중역한 것이 대부분인 데다 스페인어판 번역본도 오역이나 몇몇 문장이 누락되는 단점이 있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지적. “내가 선택한 원서는 중세 스페인어를 현대어로 바르게 옮긴 것으로 정평이 난 가오스 교수(전 스페인 마드리드대)의 ‘돈키호테’입니다. 꼬박 2년 동안 10명의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과 함께 원문을 한 문장 한 문장 독해해 가며 토론을 벌여 번역의 정확도를 높였어요.”
그는 세르반테스 특유의 사실적인 문체와 기법을 살리되 기존 번역본 중 이해하기 힘든 단어들을 쉽게 바꿨다.
“돈키호테는 여러 면에서 혁명적인 소설입니다. 귀족이 아니라 힘없는 자들을 위한 기사도를 보여주고 있고,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페미니스트적 주장들이 곳곳에 나타나지요. 여성의 인권은 물론이고 집회 결사 종교 선택의 자유가 없었던 절대왕정시대에 작가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통해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짚었지요.”
세르반테스는 당시 스페인에서 유행했던 통속적인 기사소설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돈키호테의 광기를 통해 반(反)종교개혁 운동과 합스부르크 절대왕조의 통치 아래 있던 스페인 사회를 풍자,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주의자 돈키호테와 현실주의자 산초에 의해 상징되는 평행선은 바로 인간이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벌이는 끊임없는 투쟁을 의미하지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꿈과 이상을 잃지 않는 돈키호테 캐릭터는 문명의 진화로 자유의 폭이 확대될수록 그 공감대가 넓어져 가고 있습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