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인사비리 의혹 파문에 책임을 지고 사의(辭意)를 표명했던 남재준 육군 참모총장이 내년 4월까지 총장직을 지킬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 총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전역지원서를 반려했고, 남 총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업무를 수행했다. 남 총장이 퇴임의사를 굽히지 않았다면 이번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점에서 남 총장이 군(軍) 통수권자의 뜻에 따른 것은 올바른 처신이라고 본다.
우리 군은 지금 국방부 문민화와 군 사법개혁, 자주국방 추진까지 여러 과제를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주적(主敵) 개념 삭제논란에서 볼 수 있듯 외적(外的) 환경 변화도 심하다. 이럴 때 군이 안팎의 도전을 극복하고 정예 강군(强軍)으로 거듭나려면 남 총장과 같은 ‘원칙주의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55만 육군의 중심으로서 남 총장은 국가안보의 근간 조직을 지키고 키우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괴문서 내용의 진위(眞僞)를 가리는 게 선결 과제다. 전체 군 조직을 매도하는 익명(匿名)의 비판에 대해 군이 자발적으로 진실 규명의 의지를 보여줄 때 군의 명예와 자존심도 지킬 수 있다. 그동안 군 내부에서 크고 작은 부정비리가 그치지 않았던 만큼 이번 일을 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불식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집권측이 추진하는 군 개혁에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동안 집권측은 당사자인 군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국방부 문민화와 군 사법개혁 등 주요 현안을 밀어붙인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군의 특수성을 외면한 개혁은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군은 개혁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돼야 한다. 전환기의 군을 이끄는 남 총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