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고 있는 ‘뉴 라이트’ 운동 참여자들이 사상적 기반으로 자유주의를 내세우면서 자유주의가 새삼 각광받고 있다. 자유주의는 그동안 ‘자유 대한’이라는 표어처럼 냉전시대 한국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사상이기도 했다. 그런 자유주의가 냉전이 끝난 21세기 한국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왜 지금 자유주의인가
한국의 국시는 자유민주주의다. 그러나 자유는 그동안 민주주의의 수식어로만 기능해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샴쌍둥이처럼 붙어 다니지만 다른 사상이라는 게 학자들의 지적이다. 민주주의가 권력창출과 운용에 대한 일반원칙이라면, 자유주의는 역사적으로 서구시민사회가 봉건영주 및 절대군주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획득한 다양한 가치 일반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본주의, 세속주의, 합리주의, 법치주의, 종교와 사상의 자유, 다원주의, 자본주의 윤리, 인권존중 등을 통칭한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에 의거해 자유주의적 가치를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자유주의 사상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지만 자유주의는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즉 자유민주주의의 형식은 갖췄지만 그 실질적 내용을 채워 가야 하는 역사적 단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최근 들어 자연스럽게 자유주의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황경식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현 정부의 이념성향이 좌편향함에 따라 균형 잡기의 일환으로 자유주의가 강조되는 면도 있다고 봤다. 그는 “참여정부가 문제해결 방식으로 과거 운동권의 논리를 좇아 집단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여론몰이를 사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하며 “이에 대응하는 운동의 논리로서 개인과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유주의연대의 신지호 대표(서강대 겸임교수)는 “과거 자유주의는 그저 기득권 보호를 위한 반공주의의 동의어였을 뿐”이라면서 “한국이 선진국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 위해 자유주의의 진정한 실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헌법재판소에 대한 여당의원들의 공격은 자유주의의 핵심 원리인 법치주의와 입헌주의를 위협하는 것”이라면서 “이는 민주의 이름으로 자유를 제약하거나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자유주의의 다양한 스펙트럼
자유주의는 역사가 오래된 만큼 그 폭이 상당히 넓다. 우선 로크와 루소 등으로 대표되는 고전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사적 소유권을 중시하는 한편 국가 역할의 최소화를 주장해 자유방임주의라고도 불린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18∼19세기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근대적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데 이념적 기초를 제공했다. 그러나 이는 사회주의의 등장과 함께 빈부격차의 확대, 독점의 폐해 등을 외면하는 부르주아계급의 이데올로기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런 비판을 수용한 것이 ‘자유론’의 저자인 존 스튜어트 밀이 제시한 ‘사회적 자유주의’(1차 신자유주의)다. 마르크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밀은 ‘자유의 주적은 국가권력이 아니라 빈곤’이라는 관점에서 기회의 균등과 사회복지의 개념을 도입했다.
또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발터 오위켄은 국가가 경제질서 확립을 위해 개입하되 경제활동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질서 자유주의’(2차 신자유주의)를 내세워 ‘라인강의 기적’을 뒷받침했다.
오늘날의 신자유주의(3차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주의적 ‘시장의 실패’를 국가가 대신할 수 있다고 믿었던 케인스 경제학이 1970년대에 좌초하면서 시장에 대한 고전적 자유주의의 믿음을 경제뿐 아니라 사회분야로까지 확대한 이론이다.
자유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철학적으로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띠게 된다. 밀의 계승자라고 할 수 있는 존 롤스는 ‘정의론’ 등을 통해 자유주의에 평등주의적 요소를 더욱 강화한다. 롤스는 천부적 재능조차 공공재라는 입장을 취했고, 분배문제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가장 많은 재분배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롤스의 입장은 흔히 자유주의적 좌파(liberal left)로 분류된다.
또 롤스의 수정주의적 입장은 ‘분배의 강조는 결국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와 ‘개인의 자유 못지않게 공동체적 가치도 중요하다’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를 낳았다.
결국 자유주의는 자유와 시장을 강조하는 우파로부터 상대적으로 사회성과 분배를 강조하는 중도좌파까지를 아우르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