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인이자 방송인으로 일해 온 이규용씨(59·사진)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서 수집가다. 이씨는 이인용 MBC 전 앵커(현 보도국 통일외교부장)의 형이다. 이씨의 경기 용인시 하마비 마을 집에 가보면 그가 평생 자신의 도서관을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방 4개의 4면 벽에 4000권가량의 헌 책들이 가득 쌓여 있다.
이씨는 고교 은사인 서지학자 하동호 전 공주대 교수(작고)의 책 수집 일에 따라다니다 그 취미를 물려받았다. 그는 “어떤 책은 ‘내가 가지지 않으면 세상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사들이곤 했다”며 “책 수집이 본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12월 1∼7일 서울 정동 경향갤러리에서 자신이 이렇게 모아온 책들 가운데 400권을 간추려 ‘애장서책전-고서(古書)들의 과거사’를 갖는다. 광복 전에 나온 소설가 이광수의 ‘젊은 그들’ ‘세종대왕’, 박종화의 ‘금삼의 피’ ‘다정불심’의 초판본 등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는 또 ‘수제(手製) 삼국지’도 나온다. 말 그대로 이씨가 고서처럼 실로 묶어낸 박종화의 ‘삼국지’다. 그는 “박 선생님이 한국일보에 1961년부터 5년간 연재했던 ‘삼국지’ 1603편을 다 모았다”며 “나중에는 박 선생님의 집까지 찾아가 붓글씨 원고 일부와 연재화가 김기창 화백의 그림 한 장을 얻어내 이 수제 삼국지에 넣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전후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볼 세 종류의 오래 된 캘린더들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째는 주한 미군사령부가 1953년부터 펴낸 월간지 ‘자유의 벗’에 매달 부록으로 끼워준 월력(月曆)으로 71년 이 잡지 종간 때까지 모았다. 홍익대 미대를 나온 이씨는 당시 누드모델을 구하기 힘들어 일종의 ‘대체용품’으로 1969년부터 미국 ‘플레이보이’지 캘린더를 모아왔는데 이 캘린더들도 내놓는다. 세 번째는 한독약품 캘린더. 그는 정교한 유럽 명화 복사본들을 아트지에 찍어 만든 이 캘린더들을 1963년부터 41년간 모아왔다. 이 캘린더들도 이번 전시에 나온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