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취업자 3명 중 1명꼴인 773만명의 자영업자들이 2년째 이어지는 내수침체로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가게의 권리금이 폭락하고 매물로 나온 가게가 쌓이면서 ‘자영업 대란(大亂)’이란 말이 낯설지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본보가 28일 입수한 한국노동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전국의 자영업자 1506명을 표본 조사한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4인 가족 월 최저생계비(101만원)도 못 버는 자영업 가구주가 조사 대상자의 절반에 가까운 44.36%(668명)에 이르렀다.
▽‘생계형 자영업’의 과잉공급=지난해 취업자 2213만9000명 가운데 자영업자는 34.9%인 773만600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았다. 독일(11.1%) 영국(11.7%) 스웨덴(9.8%) 일본(16.3%) 미국(7.2%)의 2∼5배에 이르며 한국과 경제수준이 비슷한 대만(28.4%)보다도 높다.
전체 자영업 중 서비스업 분야의 자영업자 수도 1996년 474만7000명에서 지난해에는 529만2000명으로 54만5000명(11.5%) 늘었다.
▽정부의 판단착오=정부는 실업대책의 일환으로 ‘생계형 창업’ 지원을 내세우면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1999년 이후 올 10월까지 정부가 지원한 돈은 1조8980억원에 이른다.
자영업 창업 붐과 경기회복으로 1998년 7%에 이르던 실업률은 올해 10월 말 현재 3.3%로 내려갔다. 그러나 신규 일자리 창출과 퇴출 근로자들의 재취업이 매우 어려운 상태에서 자영업자 급증에 따른 통계상의 실업률 하락은 고용 상황의 착시(錯視)를 불러오고 있다.
최중석(崔重石) 최선창업연구소 소장은 “정부가 융단폭격 방식의 자금 지원으로 양적인 접근을 한 것이 문제를 악화시켰다”며 “양질의 창업정보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자금을 사용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자영업 인프라의 미비=자영업 인프라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 창업을 돕는 소상공인지원센터만 해도 미국과 일본은 1000여개나 되지만 한국은 60개에 불과하다.
창업 컨설팅의 질도 낮다. 한국은 소상공인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는 상담사들 중 상당수가 전직 공무원, 은행원들로 자영업 경험이 없다. 반면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은 오랜 현장경험을 가진 전직 자영업자들이 창업 지도를 하고 있다.
또 선진국의 자영업주는 대부분 최소 5년 이상 준비기간을 갖고 창업을 한다. 분야도 자신이 오랫동안 종사한 업무와 연관된 ‘커리어(Career) 창업’이 많다. 한국처럼 전직 회사원이나 은행원이 갑자기 음식점, 꽃가게, 모텔을 창업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노동연구원 금재호(琴在昊) 선임연구원은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신용불량자 및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는 등 자영업 대란은 이제 사회문제로 비화되고 있다”며 “종합적인 처방과 자영업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