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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이일하]아동보호사업 지방이양 안된다

입력 | 2004-11-28 18:57:00


1998년 4월 영양실조와 온갖 학대로 상처투성이가 된 5세 남아가 한 민간단체의 도움으로 부모로부터 구출된 사건이 있었다. 여덟 살짜리 딸을 굶겨 숨지게 한 뒤 암매장한 비정한 부모도 있었다. 온 국민을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게 한 이런 사건들을 계기로 아동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다.

그 뒤 아동인권 보호활동을 하는 민간단체들의 꾸준한 요청에 의해 2000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됐다. 각 시도에 아동학대예방센터가 지정 개설되고 ‘1391 아동학대신고’ 핫라인이 생겨났다. 그동안 가정문제로만 치부돼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아동학대에 국가가 공식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보호체계가 마련된 셈이다. 이는 아동권리국제협약 비준국가로서 1994년과 2000년에 제출한 우리나라의 협약이행보고서에 대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아동인권 보호를 위한 정부의 노력이 미흡하다’고 지적한 데 대한 국가정책의 반영이기도 했다.

정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아동학대 예방사업을 지방이양사업으로 분류해 현재 국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이는 현실을 외면한 발상으로 우리 아동들의 인권이 침해되도록 국가가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나마 그동안 어렵게 전개해 온 아동인권 보호정책이 후퇴하는 건 아닐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부모의 이혼, 가출, 자살 등 가족해체 현상이 심화되면서 아동학대 신고 사례는 매년 증가 추세로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1391 핫라인을 통한 신고 건수는 5584건에 이르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8.5%나 증가한 것이다. 이에 비해 아동학대예방센터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극히 미미할 뿐만 아니라 서비스 역시 피학대 아동을 위한 현장조사와 상담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피학대 아동 치료와 보호, 아동학대 예방교육 등 일반적이고도 구체적인 사업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아동을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전통적 관습 등으로 인해 아동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매우 낮다. 지방자치단체의 아동학대 예방사업에 대한 이해 역시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지는 편이다. 아동보호사업이 지방으로 이양될 경우 필연적으로 지방정부간 복지수준의 불평등을 유발하게 될 것이며 특히 선거권이 없는 아동에 대한 사업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제도가 발달한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의 복지예산에 대한 재정분담률은 약 20%지만 아동복지예산만큼은 그 중요성을 인정해 연방정부의 재정분담률이 50%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아동학대 예방사업의 지방이양으로 인해 23억원에 불과한 이 사업의 국고부담이 더욱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와 함께 이제 막 내실을 꾀하고 있는 아동학대 예방사업의 싹도 고사하는 것은 아닐까.

아동학대는 아동의 ‘생존권’ ‘보호권’ ‘발달권’ ‘참여권’ 등의 기본권리를 짓밟는 범죄행위다. 피학대 아동에 대한 치료와 가학자에 대한 처벌은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과제다. 부디 국회에서 아동권리보호사업이 지방에 이양되지 않도록 막아주기 바란다.

이일하 굿네이버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