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점가에서 팔리는 책이라고는 실용서와 아동도서뿐이라고 한다. 아동도서라고 해도 초등학교 3학년까지가 주대상이다. 4학년부터는 학원다니랴, 과외하랴 도무지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공부 때문에 책을 못 읽는다’는 아이러니가 오늘 우리의 현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15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학생 성취도 국제 비교(PISA) 2000’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독서 흥미도는 거의 꼴찌 수준이라고 한다. 하루에 1시간 이상 책을 읽는 청소년이 18%, 30분 이상 21.9%, 30분 이내 29.6%였으며 전혀 읽지 않는 학생이 30.6%였다.
이렇게 책을 읽지 않는 젊은이들이 창의력이 개인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21세기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점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발표한, 2010년부터 고교생들의 독서결과를 대학입시에 반영할 수 있게 한다는 제도개선의 취지는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독서학원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등 사교육이 오히려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난다니 걱정스럽다.
바뀌는 입시제도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안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는 결코 독서능력이 향상되지 않으며 책읽기의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자칫 독서가 또 하나의 ‘지겨운 암기과목’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모든 학습이 그렇지만 특히 책읽기는 강요가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책읽기 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학업 부담은 많고 공공도서관은 그저 ‘독서실’ 기능에 그치는 곳이 대부분이다. 어린아이가 출생하면 건강수첩과 함께 독서수첩을 주고, 집 가까이 공공도서관이 널려 있으며, 전문 사서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유럽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여건만 탓할 수는 없다. 국가가 해결할 문제들은 따로 요구하더라도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적지 않다. 어린 자녀들에게 자주 책을 읽어 주고 초등학생이 되면 함께 책방이나 도서관엘 가자. 책은 스스로 고르도록 하자. 그래야 열심히 읽게 되며, 책을 보는 안목도 키워진다.
부모도 책을 읽어야 한다. 부모는 연속극을 보면서 자녀들에게만 ‘책 읽으라’고 한다면 이는 그저 잔소리일 뿐이다. 자녀들의 책을 함께 읽으면 더 좋다. 요즘 청소년 도서 중엔 어른이 읽어도 좋은 책이 많다. 읽고 나면 자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독서토론’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생각나는 대로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점차 수준이 높아지게 된다. 같은 책을 읽은 인간은 정신적 동지가 된다. 그들 사이엔 대화 통로가 생기게 되니, 세대간의 대화 단절을 해소할 수 있는 보너스도 얻을 것이다.
이번 입시개선안이 독서교육의 긍정적 전기가 되려면 합리적인 평가기준 개발, 도서관 확충 등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래야 학부모들의 불안을 잠재워 독서 사교육을 막을 수 있으며 독서가 암기과목으로 전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부모들의 역할이다. 독서교육은 부모의 권리이자 의무다.
홍기삼 동국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