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의원
《민주노동당 노회찬(魯會燦)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이면서도 주한미군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노 의원은 얼마 전 용산 미군기지 이전협정 원문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켰다. 또 외교통상부가 주미 한국대사관에 보내는 문건을 ‘주한 미국대사관에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그는 30일에는 “주한미군의 지역 역할이 북한과 중국에 대한 선제 군사개입”이라는 주장을 했다. 그는 그 근거로 ‘주한미군 지역 역할 수행 대비책’이라는 2급 비밀문서를 공개했다. 국방부는 “사실 무근”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 주장을 긴급 점검했다.》
노 의원이 3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주장한 내용의 핵심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주한미군의 (동북아) 지역 역할은 ‘북한과 중국에 대한 선제 군사개입’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측이 주한미군의 이 같은 지역 역할 수행에 한국군도 참여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선제 군사개입’=첫 번째 주장에 대한 논거로 노 의원은 지난해 7월 제3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회의에 앞서 한국측 협상팀의 사전준비회의에 제출된 ‘주한미군 지역역할 수행 대비책’이라는 2급 비밀문건을 제시했다. 이 문건은 주한미군 투입 시나리오를 ‘저강도’ ‘중강도’ ‘고강도’로 나눠 각각의 군사 개입 유형을 제시하고 있다.
역내 재난구호와 해양수색, 해로 안정 확보 등 방어적 개념에 그친 ‘저강도 시나리오’는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지역 테러지원국가에 대한 응징 △비국가 테러단체들의 색출 및 본거지 공격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추진하는 역내 국가들에 대한 군사적 압박 등의 내용이 포함된 ‘중강도 시나리오’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대량살상무기 개발 추진 국가’는 동북아 지역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을 지칭하는 것. 이는 대북 군사 압박을 반대해 온 한국 정부의 방침과도 배치된다.
‘고강도 시나리오’는 중국 등 잠재 지역패권세력과 역내 다른 국가간 분쟁 개입, 중국-대만 양안 갈등시 군사적 조정과 북한체제 위기 발생시 분쟁 개입 등 ‘전면전’ 상황까지 가정한 것이다.
노 의원은 이 같은 주한미군의 지역 역할 수행에 한국의 참여를 요구한 근거로 문건에 있는 ‘지역 안정에 대한 한국군의 지원 역할을 위한 법적근거 부재’라는 대목을 들었다. “미국의 요구가 없었다면 한국이 먼저 한국군 참여의 문제점 및 대비책을 마련했을 리 없다”는 것이 노 의원의 주장.
▽“실무자가 작성한 회의 자료일 뿐”=국방부는 “문건이 한미 협의를 위해 작성된 것이 아니라 담당 실무자가 혹시 있을지 모를 토의에 대비해 각종 논문 등 자료를 종합해 놓은 데 불과하다”며 “한미간 주한미군 지역안정 역할 등에 대한 어떤 협의나 의견을 나눈 바 없다”고 밝혔다. 이날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윤광웅(尹光雄) 국방부 장관은 “FOTA 회의는 비밀이다. 문건의 출처를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확인도 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노 의원에게 문건을 전달하지는 않았지만 한 달 전쯤 국방부 관계자가 ‘비밀을 지키겠다’는 전제 아래 직접 만나 설명해 준 내용을 공개한 것은 상궤를 벗어난 행동”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노 의원이 한미 협상 관련 내용을 잇달아 공개하는 것이 향후 대미 협상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편 외교통상부도 최근 노 의원에게 “의원의 정부 기밀 열람은 관련 의안 심의를 위한 것이지 일반 공개를 위한 것은 아니다”며 “그 취지에 벗어날 경우 관련 법률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