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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터뷰]설경구 “역도산 통해 나를 표현했다”

입력 | 2004-12-01 18:09:00

안철민 기자


‘천황 아래 역도산(力道山).’ 주특기인 가라테 촙을 날리며 전후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일본 국민을 열광시켰던 함경도 출신 프로레슬러 역도산. 전후 일본의 최고 영웅이었던 그의 화려하고도 어두운 인생을 담은 영화 ‘역도산’(송해성 감독)이 1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110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일본 로케이션을 통해 태어난 이 영화에서 역도산 역을 맡은 설경구(36)를 1일 만났다.

―역도산이란 인물을 어떻게 해석했나.

“역도산을 미리 연구하지 않았다. 책 보고 연구하면 오히려 연기에 방해된다. 난 역도산을 재현하려는 게 아니다. 그럴 거면 다큐멘터리가 더 낫지. 따라하기 싫었다. 대신 나의 것을 갖고 역도산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럼 당신이 잡은 역도산의 콘셉트는….

“비열한 남자다. 16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생존의 몸부림 속에서 나온 비열함 말이다. 하지만 난 역도산을 모사꾼이라 욕하진 않겠다. 영화를 찍는 내내 이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지 불쌍한 사람인지 헷갈렸다.”

―영화의 97%가 일본어인데….

“처음 석 달간 일주일에 두 번 사람 붙여 배웠다. 그래도 일본 배우들과 대본을 읽다보니, 대사가 끝난 건지도 모르겠더라(웃음). 일본 배우들이 개인교사를 해줬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서는 도움 받지 않았다. 발음 따라하다가는 결국 ‘나’가 없겠더라고. 일본 아나운서가 대본을 책 읽듯 발음한 걸 녹음해 오라고 시켰다. 그걸 촬영 전날 듣고는, 촬영 당일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내 감정따라 막 갔다. 감정까지 놓치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 일본인 스태프들이 점점 내 일본말이 자연스럽다고 하더라.”

―레슬링 장면은 대역이 없어 고생이 많았겠다.

“실제 살과 살이 부딪치는 것이니 신경이 날카로웠다. 거구의 일본 레슬러들이 나를 패대기치면 한동안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나중엔 마른침이 나오더라. 나도 모르게 ‘나 죽겠네’ ‘나 죽겠네’ 했다고 한다. 스태프들이.”

―맞는 것만큼 때리는 것도 어려웠겠다.

“야마모토 다로란 일본 배우를 화장실에서 심하게 패는 장면이 있었다. 감독이 촬영 전 서로 인사하라고 하기에 내가 안 한다고 했다. 친해지면 인정 생기니까. 슛(촬영) 들어가자마자 제대로 팼다. 정두홍 무술감독이 송해성 감독에게 ‘경구 쟤는 슛 들어가면 눈깔(눈알) 돌아간다’고 하더라(웃음).”

―연기 때문에 살을 20kg이나 늘려 94kg이 됐다가 촬영 뒤 한 달 반 만에 다시 18kg을 뺐다.

“배우가 살 빼는 건 자랑이 아니다. 온종일 살 빼야겠다는 생각밖엔 없는데 어찌 안 빠지겠나. 저녁때는 청담대교에서 반포대교까지 뛰어갔다 돌아오고 했다. 어지럽고 힘들어서 택시 타고 올까봐, 돈 한 푼 안 가지고 짧은 빤스(반바지) 바람으로 나갔다. 나를 못 믿어서.”

―‘박하사탕’ 이후 4년 만의 단독 주연이다. 110억원이란 제작비를 짊어졌다. 부담스럽지 않은가.

“왜 내가 110억원을 짊어졌다고 그래. 난 개런티랑 도시락 값만 챙겼다. 나머진 송 감독이 다 썼다(웃음). 어느새 헝그리 정신이 없어졌다. 뱃살에 기름기가 꽉 찼다. 솔직히 적당히 묻어갈 수도 있었다. 나한테 ‘연기파 배우’라고들 그러는데, 이걸로 몇 년은 먹고살겠지(웃음). 몇 작품 망쳐도 갑자기 ‘연기파’가 아니라곤 못할 거니까. 하지만 날 시험해 보고 싶었다. ‘살 뺄 수 있을까. 혼자 또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에이 ×팔, 해보자’ 이렇게 된 거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