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사회를 무리하게 뒤바꾸려고 하는 사회는 후진적인 사회다.”
본보 주관으로 지난달 30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 라이트 토론회’에서는 개인의 가치가 존중되는 ‘자유주의’와 ‘작은 정부’가 뉴 라이트가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의 핵심이라는 데 참석자들이 견해를 같이했다.
이런 관점에서 토론자들은 현재 한국 정치는 대의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권력이 반(反)법치주의를 부추기면서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 원칙을 위협하고 있다는 우려였다. 자유민주주의 또한 집단주의를 내세운 포퓰리즘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상인 교수는 “뉴 라이트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은 민주화 이후 찾아온 민주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며 “‘자유’ ‘민주’ ‘법치’라는 뉴 라이트의 핵심 가치를 지켜 나가기 위해서는 과잉 상태인 비(非)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냉전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가 반공(反共)과 동일시되면서 개인의 가치가 억압됐다면, 지금은 그 반작용으로 집단과 평등의 이름으로 개인의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둘 다 정부의 개입이 과도하다는 점에서 작은 정부와는 거리가 멀다.
김기수 변호사는 “법을 수호해야 할 정치권력이 ‘나에게 불리하면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반법치주의적 사고를 국민에게 심어주고, 경제와 교육 등에서 형평의 논리를 들이대며 개인의 선택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제약하는 것은 역사의 퇴보”라고 규정했다.
정부여당의 정치적 행태에 대해서도 진단과 분석이 이어졌다.
박효종 교수는 “현 정부가 참여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특정 지지집단과 인터넷을 앞세운 포퓰리즘의 성격이 짙다”며 “탈권위주의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정당한 권위마저 공공연히 부정하는 바람에 사법부의 권위, 의회주의 등 소중한 가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노무현(盧武鉉) 정권이 들어선 이후 국가 리더십의 상이 흔들리고 있다”며 “과거 정부여당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통합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이해관계의 한 쪽 편에 서서 상대를 공격하고 편 가르기 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정치를 스포츠에 비유한다면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위치에서 코치 역할을 자임하는 바람에 리더십의 위기를 맞았고, 그 결과 게임의 룰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상대를 타협과 대화의 상대로 보지 않고 적으로 규정하는 이분법적 사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토론자들은 한나라당도 혹독하게 비판했다. 뉴 라이트가 정부여당의 ‘좌(左) 편향’을 비판한다는 이유만으로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것처럼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나라당이 대안세력이라면 뉴 라이트가 등장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김 변호사는 “한나라당이 국정 현안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국가 비전도 내놓지 못하면서 정부여당의 실정(失政)에 따른 반사이익에만 의존하는 한 건전 보수를 대변할 수는 없다”며 “독재의 원죄(原罪), 부정부패 등 부정적 유산과 과감히 결별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단언했다. 전 교수는 “현재의 한나라당은 뉴 라이트의 맥락과 동떨어져 있다”고 못 박기도 했다.
뉴 라이트는 필요한 변화마저 거부하는 ‘꼴통보수’와 무조건 바꾸고 보자는 ‘꼴통진보’를 모두 배격하고, 이념의 중간지대를 지향해야 한다는 자기 선언인 셈이었다.
이 대목에서 정치 충원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현인택 교수는 “정치 행정 사법 언론 기업 등 사회의 여러 분야를 살펴보면 삼류들이 정치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합리적인 정치적 견해와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정치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수혈구조가 선진화돼야 새로운 정치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 교수는 “사람이 바뀌어야 정치가 바뀐다는 명제에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뉴 라이트가 성급하게 정치세력화의 길을 모색한다면 오해를 부를 것”이라고 경계했다.
정리=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