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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탈북자 간첩’ 쉬쉬했던 것 아닌가

입력 | 2004-12-02 18:26:00


최근 들어 급증한 탈북자 입국 대열에 ‘간첩’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탈북자 이모 씨는 올해 4월 가족을 만나러 입북했다가 붙잡혀 북한 당국에 국내 탈북자 실태를 보고하고 밀봉교육까지 받은 뒤 한국에 재입국했다고 한다. 당국은 이 씨가 자수한 점을 들어 “적극적인 간첩활동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그 정도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우선 허술한 탈북자 관리 실태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어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탈북자 밀입북 사례가 더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가 그동안 체계적인 탈북자 관리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제2, 제3의 ‘탈북자 간첩’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언론 보도 뒤 사건 내용을 다급하게 공개한 정부 태도도 석연치 않다. 당국은 이번 사건을 의도적으로 은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 씨가 자수한 지 6개월이 돼 가는 지금까지도 ‘수사 중’이라는 해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간첩사건’을 감추고 싶어하는 정부의 뜻이 작용한 것은 아닌지 강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난 정권 때부터 ‘간첩 검거’ 소식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정부의 대북(對北) 눈치 보기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게 아닌가.

입만 열면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 뒷전으로 간첩을 내려보내는 북한의 이중적인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보다 심각한 문제는 북한의 그런 행동을 접하면서도 남북대화 재개에 매달려 웬만하면 덮고 지나가려는 듯한 정부의 자세다. 탈북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남북을 들락거릴 수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고집하는 집권당에 대한 여론 또한 차가울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탈북자 관리를 위한 보완책을 내놓아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엄중 항의하고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