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내부 분위기가 요즘 심상치 않다. 주류-비주류 간의 갈등에 이념성향이 다른 구성원들의 대립이 본격화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김형오(金炯旿) 사무총장은 2일 “3일부터 20일까지 당원과 국민을 상대로 새 당명을 공모키로 했다”고 선언했으나 보수 성향의 의원들은 내켜 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하다. 당 일각에선 박근혜(朴槿惠) 대표 등 현 지도부가 내년부터 착수할 당 쇄신을 계기로 본격적인 내부 노선투쟁의 막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돈다. 여기엔 ‘꼴통 보수’ 청산을 표방하고 있는 ‘뉴 라이트(New Right)’ 운동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투쟁배경▼
중도 성향 의원들은 “수구적 보수 이미지를 탈피하지 않고선 재집권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들은 김대중(金大中) 노무현(盧武鉉) 정부를 거치며 사회 주도 세력이 바뀐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 3선 의원은 “꼴통 보수 성향 유권자 10%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중도 성향의 15% 유권자를 잡으면 집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영남권 중심의 보수 성향 의원들은 “자칫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도 놓친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영남권 재선 의원은 “이회창(李會昌) 씨가 영남 출신이었으면 대선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뿌리 깊은 당의 ‘영남적자(嫡子)’론을 염두에 둔 주장이다.
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 더 이상 조화를 이루기는 힘들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과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는 당내 시각은 좌우 극단을 넘나들고 있다.
이 같은 문제는 당의 정체성 문제로 직결된다. 보수 성향의 의원들은 “당의 뿌리는 민정당”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있지만 중도 성향 의원들은 “한나라당이 왜 5, 6공 민정당의 원죄까지 떠안아야 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향후전망▼
박 대표는 내년 상반기에 가동할 선진화 프로젝트를 통한 당 쇄신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당 여의도연구소는 40개 과제를 선정, 대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박 대표의 당 쇄신론은 분당(分黨)론과 거리를 두고 있다. 분당론은 박 대표의 당 장악력을 와해시킬 우려가 있다. 당 쇄신론은 이명박(李明博) 서울시장과 손학규(孫鶴圭) 경기지사 등 다른 대권 주자를 의식한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당 쇄신의 시동이 걸릴 경우 자연스럽게 격렬한 노선 투쟁으로 번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만만찮다. 당 쇄신 자체가 지닌 ‘인화성(引火性)’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현 정당 청산→신당 창당’ 수순의 로드맵을 그리고 있다. 현 집권 세력이 중요한 고비마다 신당 창당의 승부수를 던져 환골탈태하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다가간 반면 한나라당은 ‘민정당의 후신’ ‘차떼기당’이란 부정적 유산을 고스란히 안고 있기 때문이다.
▼돌발변수▼
영남권 보수 성향 의원들은 개혁적 노선이 뚜렷한 박세일(朴世逸) 박형준(朴亨埈) 박재완(朴宰完) 의원이 포진한 여의도연구소를 노선 투쟁의 ‘컨트롤 타워’로 보고 있다.
여의도연구소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있는 선진화 프로젝트는 당내 보수 성향 의원들을 겨냥하고 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선진화 프로젝트는 열린우리당의 내년 4월 전당대회를 겨냥한 맞불 카드”라며 “당내 보수 성향 의원들이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제시하며 압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정국 상황도 한나라당 노선 투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당장 내년 4월 재·보궐선거가 분기점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한나라당 지지도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여전히 ‘마(魔)의 지지율 30%’ 선에서 맴돌며 회생의 기미를 보이지 못할 경우 내부 노선 투쟁이 본격화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많다.
이회창 전 총재의 행보도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변수. 현재로선 이 전 총재의 당무 복귀에 대한 당내 반응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박 대표에 맞서는 비주류 진영이 ‘이회창 카드’로 박 대표를 압박할 경우 당내 분란은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정연욱 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