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간첩 교육을 받은 탈북자의 재입국 사건은 열린우리당이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2일 이와 유사한 사건의 재발 가능성이 높고, 국보법이 폐지될 경우 관련자 처벌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열린우리당을 압박했다. 또 이 사건이 드러날 경우 국보법 폐지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한 정부가 고의적으로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열린우리당은 국보법을 폐지하더라도 국회에 제출한 형법 보완만 이루어지면 유사 사건 수사와 관련자 처벌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유사 사건 발생 및 관련자 처벌 가능성=이번 사건은 피의자인 탈북자 이모 씨(28)가 자수하는 바람에 전모가 드러났다. 그러나 만약 이 씨처럼 북한에서 간첩 교육을 받고 재입국한 다른 탈북자가 자수하지 않고 간첩으로 암약하고 있다면 어떨까. 이미 국가안보에 구멍이 뚫려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은 이날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여러 경우의 탈북자 밀입북 케이스가 있다”며 “지난해 해외여행을 한 탈북자 600명 중 70%는 중국을 방문했으며, 현재 40여 명이 여행 예정기간을 넘겨 장기 체류 중”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최근 중국을 거쳐 북한에 드나드는 탈북자가 늘어나면서 ‘이적행위’를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탈북자 유모 씨(36)는 2000년 6월 가족을 데려 오겠다며 재입북한 뒤 대남 비방방송을 하다가 재탈북했고, 1996년 탈북한 남모 씨(47)는 2000년 8월 다시 북한에 들어가 한국의 정보기관 관련 정보 등을 국가안전보위부에 알려준 뒤 국내로 들어왔다.
국방 전문가인 한나라당 송영선(宋永仙)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도 여당은 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국방부는 주적개념을 아예 없애자고 한다”고 비판했다.
공안검사 출신인 한나라당 장윤석(張倫碩) 의원은 “국가보안법을 아무런 보완 없이 그대로 폐지하면 이번 사건의 경우 법적용 자체가 안 돼 잠입, 탈출이나 회합, 통신 등을 이유로 처벌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최재천(崔載千) 문병호(文炳浩) 의원 등은 “국보법이 폐지돼도 이 씨 사건은 형법의 내란예비음모 등 조항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다”며 “국보법 폐지에 따른 안보 공백을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은폐 의혹=한나라당은 국정원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국보법 폐지와 남북관계에 나쁜 여론이 형성될 것을 예상하고 이 씨 사건을 숨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 비공개 회의와 국정감사에서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의 존재 여부를 묻는 의원들의 질의에 부인하는 답변을 반복한 것을 문제 삼고 있다.
정보위 소속인 한나라당 공성진(孔星鎭) 의원은 “7월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간첩이 탈북자로 위장해 입국한 경우가 있느냐’고 질문했으나 국정원 측은 ‘예전엔 그런 경우가 1, 2건 있었지만 최근엔 없었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같은 당 권영세(權寧世) 의원은 “9월 국감에서도 국정원은 ‘최근에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은 없었다’는 답변만 반복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정원은 “경찰청 등 대공관련 기관에 이 씨 사건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며 “의도적으로 이를 은폐했다는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