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라이트(New Right)는 미국과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점에서 진보 진영은 물론 올드 라이트(Old Right)와도 분명한 차별성을 보인다.
본보 주관으로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뉴 라이트 토론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국제주의’와 ‘열린 민족주의’의 시각에서 외교 안보 통일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국내 권력유지를 위해 냉전체제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이용했던 과거 보수와 마찬가지로 진보 진영도 낡은 이념의 틀에 갇혀 국제관계의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며 진보 진영의 태도를 비(非)국제주의와 닫힌 민족주의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토론자들은 특히 한미동맹을 발전적으로 유지해 가는 전제 위에서 주변국들의 힘과 전략을 적절히 활용하는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진보 진영은 국제적 역학 관계를 무시한 채 미국과 동떨어져 북핵과 통일 문제에 접근하려 했으나 번번이 벽에 부닥치는 딜레마에 빠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협력적 자주국방’이나 ‘중국 대안론’ 등은 바로 이런 모순을 피하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것. 과거 보수 집권세력 또한 미국과의 절대적인 동맹과 반공에 집착해 유연한 국제주의적 태도를 취하지 못했으며 그 결과 자율적 외교 역량을 배양하지 못했다는 통렬한 비판이 제기됐다.
현인택 교수는 “친미와 반공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그런 말만 나오면 ‘수구 꼴통’으로 몰아붙이는 이분법으로는 복잡한 국제관계 속에서 국가이익을 극대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박효종 교수는 “미국과의 관계도 친미냐 반미냐 하는 이분법을 넘어 용미(用美)의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성일 교수는 “올드 라이트가 반공 지상주의에 매몰되고 좌파가 자주 이데올로기를 기초로 하고 있다면, 뉴 라이트는 국제적 개방성을 주요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들은 북한과 통일 문제에 대해서도 좌우 양 진영이 통일지상주의나 안보지상주의 같은 단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현 교수는 “북한은 극복의 대상인 동시에 더불어 살아야 하는 동포라는 양면성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며 “수구 보수는 전자에만, 꼴통 진보는 후자에만 매몰돼 남북관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 결과 북한 주민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못된 채 북한 정권의 비위나 맞추는 기형적인 상황을 초래하곤 했다는 것.
김기수 변호사는 “민주주의 투사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현 정권에 넘쳐나는데도 북한의 처참한 인권에 대해서는 ‘김정일 정권을 흔들면 위험하다’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우며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승룡 사무처장은 “현 정권이 본의 아니게 북한 정권과 운명 공동체로 비치게 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살기 위해서도 북한 정권의 변화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 교수는 “개성공단 건설과 인도주의적 지원은 지지하되 인권과 민주주의 등 보편적 원칙은 양보하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 열린 민족주의”라고 말했다.
박 사무처장은 “열린 민족주의는 인류의 보편 가치를 수용하고 유엔 등 국제기구의 합의를 존중하는 것”이라며 “현 정권은 대북정책에 있어서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닫힌 민족주의의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통일의 네 주체인 남북 정권과 남북 주민 가운데 북한 주민은 사실상 통일 논의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통일 이후 북한 주민은 2등 국민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으므로 대비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남 교수는 “수년 전 북한 경제난이 최악의 상황에 처하자 통일을 부르짖던 좌우 양 진영 모두가 ‘급속한 북한 붕괴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며 허둥댔던 것은 좌파의 경우 믿었던 이데올로기가 흔들리는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이었고, 우파는 경제적 부담을 우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남북의 생산성 등을 고려하는 원칙과 현실에 입각한 통일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상인 교수는 “과거 보수와 좌파 진영, 북한은 각자의 통일방안을 갖고 있지만 뉴 라이트는 이제 형성 단계인 만큼 구체적인 통일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며 “합리적인 통일 방안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리=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