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안식년을 끝내고 올 7월 31일 오후 늦게 귀국해 숨 돌릴 틈도 없이 공사 준비에 들어갔다. 설계를 미리 확정한 상태였으므로 건축사인 동생은 바로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허가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필요한 서류를 마지막으로 점검한 후 바로 ‘개발행위 허가’ 신청을 했다. 허가가 나오기까지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하므로 그동안 시공사를 선정하기로 했다.
애초에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동생이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성인이 된 후에는 서로 살갑게 지낸 것도, 대화를 많이 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사업(?)과 관련해 동생을 대하려니 어려운 점도 있었다. 다행히도 동생은 건축사들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른데 자신은 성격상 설계와 감리뿐 아니라 건축 전체에 대한 자문과 감독관의 역할까지 해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나는 시간을 쪼개 도와주는 동생에게 미안했는데 감독까지 맡겨 달라고 하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동생은 지금도 일주일에 2번씩 함께 공사장을 오르내리며 현장을 점검해 주고 있다.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 확정된 설계도를 여러 목조주택 시공업체에 보내 견적을 의뢰했다. 나는 집을 짓기 위한 기본 골조 자재는 시공업체에 맡기더라도 그 외의 자재는 나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리품을 팔기 시작했다.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하우징 페어에 가보았고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건축자재 백화점과 주변의 자재상 등을 오가며 자료를 모았다. 유행하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아파트 모델 하우스도 여러 군데 가보았다.
창호, 각종 위생도기들, 타일, 욕조, 조명, 마루, 지붕, 벽난로…. 자재들은 종류도 많고 디자인과 가격의 차이도 너무 커서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남이 지어놓은 집에 들어가 살며 이것저것 트집을 잡고 투덜대기만 하면 됐는데 막상 한정된 예산으로 집을 지으려니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구입한 터에 경사가 있어서 기초 토목공사 작업이 필요했다. 시공업체에서 소개해 준 장비와 기사를 사서 일을 진행했다.
견적을 의뢰했던 시공업체들도 모두 시원한 답을 주지는 않았다. 어떤 회사는 기본 골조 시공에 들어가는 부분만 계산해 견적을 보내기도 했고 어떤 회사는 골조, 외장, 지붕, 창호 등으로 나눠 견적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몇몇 시공업체 책임자와 직접 면담을 했다. 시공사 선정이 공사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자재상도 함께 하고 있는 한 시공업체의 책임자를 만났고 자재 창고까지 확인했다. 그리고 그 업체에 ‘평당 얼마’ 식의 대략의 견적이 아니라 도면에 따라 항목별로 나눈 견적을 의뢰했다. 시공업체는 성실하게 견적을 내줬고 항목 하나하나에 대해 확인을 했다.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 발생할 수 있는 내외장재의 변경, 추가, 삭제 부분에 대해 쉽게 정산할 수 있고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꼼꼼하게 짚어나갔다.
견적서뿐 아니라 설계도도 함께 놓고 우리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면서 추가 비용 없이 공사가 가능한지 알아봤다.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 중에는 110V용이 있고 전기 콘센트를 많이 설치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특히 전기공사 부분에 대하여 확인을 거듭했다.
시공업체는 건축주의 취향에 따라 가격의 차이가 많이 나는 부엌가구와 거실 전등(샹들리에), 월풀 욕조, 현관 붙박이장과 신발장을 기본 견적에서 제외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그 항목들은 다른 시공업체가 보낸 견적서에서도 제외됐던 것들이고 업체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어 동의했다.
기초 토목공사 부분에 대한 협의도 필요했다. 우리가 산 땅은 높낮이의 차이가 많아 집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흙을 사다 메우고 석축을 쌓는 작업을 먼저 해야 하는데 이 업체가 그런 것도 해줄 수 있는지도 알아봤다.
오랜 협의 끝에 이 업체에 공사를 맡기기로 했다. 9월10일 드디어 계약했다. 귀국한 지 한 달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한발 더 가까워진 것 같아 가슴이 부풀었다.
고은희 ehsophia@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