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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 세러피]‘발레교습소’을 보고

입력 | 2004-12-09 16:23:00

동아일보 자료사진


상영 중인 영화 ‘발레교습소’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따뜻한 장면은, 두세 명의 소년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면들이다. 독서실 창문에서 민재와 창섭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 편의점이나 구청 앞에서 세 소년이 앉아 잡담을 나누는 장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창섭을 찾으러 간 아이들이 모여서 담배를 나누어 피우는 장면…. 가장 공통분모가 많은, 동일한 종족의 무리가 모여 있는 듯한 장면들이다. 마치 원숭이들이 서로의 털을 보듬어 주듯, 그들은 낯선 세상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보루가 된다.

한편 주인공 민재와 수진이 친해지게 된 날, 둘이 함께 본 영화는 외계인 분장을 한 등장인물이 안드로메다 말로 이야기를 하는 ‘지구를 지켜라’였다. 또 다른 장면. 민재가 이모 집에서 뛰쳐나와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비통한 눈물을 흘릴 때, 아파트에 사는 다른 주민들은 저마다 문을 열고 나와 수군거리며 둘을 바라본다.

이 영화는 수능 시험을 막 끝낸,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에 태어나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첫 번째 사건을 맞닥뜨린 열아홉 살 청소년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그들 눈에 서로는 낯선 존재들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40대와 10대,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는 아이와 소년가장,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서로를 바라보는 표정에는 당황스러움과 두려움이 가득하다. 때로 나타나는 경멸의 표정은 아마도 서로에 대한 경계의 표시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서로는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고, 오해하고, 때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실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혹은 바깥세상에 나와서 처음 알게 되는 것은,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 즉 외계인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으로 그 차이를 예견하거나 이해하기엔 역부족이다. 물론, 그들의 눈에는 또 내가 낯선 존재일 것이다.

저마다의 성장 배경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을 일상에서 만나고, 때로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일하고, 부닥쳐 싸우고, 또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차이가 더 거시적인 것이 될수록, 즉 정치사회적인 이념의 문제나 세대 간의 문제로 확장될수록 그 ‘외계성’의 골은 더 깊고 개개의 인간은 그 앞에 무력하다.

사실 그런 낯선 느낌에 적응해야 하는 일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인생의 어떤 전환기를 맞을 때마다 반복된다. 삶의 어느 단계에서든 우리는 그동안 알고 믿고 적응해 온 공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한 타인의 방식을 만나거나 관계의 틀 안에 들어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과거의 나 자신은 또 현재의 나에겐 낯설고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다.

‘발레교습소’는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티격태격하며 공존하는 광경을 두 가지 방식으로 보여준다. 하나는 승언이 창섭에게 수줍게 고백하는 장면에서처럼, 서로가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들이 함께 날아오르던(영화의 영어 제목이 ‘Flying boys’라는 게 인상적이다) 소박한 무대이다. 즉 서로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하지는 않더라도, 소년과 소녀, 중국집 배달부와 동네 아줌마, 비디오가게 아저씨가 한데 모여 함께 웃고 박수치는 한 순간을 만들어 내는 것. 현실은 구청의 무대보다 훨씬 냉혹하고 초라하며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렵지만, 어쩐지 거기에 만든 이의 진심 어린 바람이 들어 있는 것 같아 미더운 느낌이다.

유희정 정신과 전문의·경상대 병원 hjyoomd@unite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