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의 역도산.
《정직했다. 하지만 너무 정직했다.
영화 ‘역도산(力道山)’은 참 오랜만에 보는 정통 드라마다. 영웅으로 칭송받았던한 실존인물을 다루면서, ‘요즘 세상에 이렇게 진지해도 돼?’라는 의문이 들 만큼 진정성 있는 태도를 고집하니 말이다. 이는 11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이 영화가 화끈하게 보여주고 ‘짠하게’ 울려주는 블록버스터의 흥행공식을
간과한 탓이 아니다. 영화 속 역도산이 그랬던 것처럼 ‘정면 돌파’를 택한 이 영화의 전략적 승부수인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문제는…그 진정성의 설득력이다.》
사진제공 싸이더스픽쳐스
성공의 꿈을 안고 일본으로 건너간 역도산은 스모 선수가 된다. 일본인이 아니면 최고 자리에 오를 수 없는 현실에 스모를 포기한 역도산은 미국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링을 배운다. 귀국한 역도산은 가라테 촙으로 미국 레슬러들을 때려눕히며 전후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일본인의 영웅으로 떠오른다. 이때부터 성공에 대한 강박에 시달리는 역도산의 삶은 어긋나기 시작한다.
‘역도산’ 하면, 박진감 넘치는 링 위의 한판 대결을 기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송해성 감독이 “전 (사람들이) 날아다니는 건 관심 없어요”(6일 기자시사회)라고 고백한 것처럼, 이 영화는 폭력의 스타일이나 그것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프로레슬링의 화려하고 파괴적인 기술을 망라하는 대신, 이 영화는 역도산의 경기를 외로운 야수의 멈출 수 없는 생존싸움으로 본다. 살과 살이 ‘쩍쩍’ 소리를 내며 맞부딪칠 때의 끔찍한 충격파를 관객의 마음속에 아주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상처로 남기려 한다. 장기인 가라테 촙을 구사할 때조차 역도산은 괴로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그는 이긴 만큼 피폐해져 간다. 전작 ‘파이란’에서도 그랬듯 송 감독은 폭력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말하기 위해 최소한의 폭력을 소비하는 쪽이다.
역도산은 ‘성공과 몰락’이라는 영웅의 일반적 생애 곡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치열한 삶이 반드시 의로운 삶은 아님’을 보여주는 바로 그 지점에서 빛난다. 후원자를 잡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고 상대 선수에게 뒷돈을 건네는 역도산의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영화는 영웅의 삶을 과장하지도 기만하지도 않겠다고 약속한다.
이 영화는 주인공 역도산을 비교적 빨리 성공의 정점에 올려놓는다. 그럼으로써 영웅의 추락을 길고도 깊은 호흡으로 바라볼 시간적 여유를 확보하려 든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주제의식이 깊어질수록, 이 영화는 중반까지 한껏 벌려놓았던 스케일에 훌쩍 올라타지 못하고 반대로 그 스케일에 대해 스스로 결별을 선언해 버리는, 강박에 가까운 자기절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역도산이 마지막 경기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지는데도, 그 감동이 왠지 ‘짠맛’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감정이입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가 된다. 더 손에 땀을 쥐게 할 수 있었고 더 안타깝게 만들 수 있었지만, 영화는 관객의 감정 곡선을 끌어올린 뒤 끝장을 보는 대신 차갑게 ‘이제 그만’이라고 한다.
연출의 이런 ‘과잉 자제’는 치명적인 딜레마를 부른다. 영웅의 삶에 아주 정직하게 접근하려 할수록 도리어 ‘상투적’이 되고, 그의 고뇌에 깊이 파고들수록 동어반복을 낳는 것이다. 이는 영웅의 일생을 포괄하려는 야심적인 작품들이 적지 않게 그러하듯, 에피소드의 숫자는 많으나 정작 그 종류와 깊이가 얇았던 탓이기도 하다. 일본 여인 아야(니카타니 미키)와 역도산의 사랑도 같은 딜레마 속에 있다.
관객은 여전히 광기 어린 설경구의 눈빛과 포효를 목격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광기는 겁날 정도로 핵폭발하는 대신, 이번엔 무척 고요하고 쓸쓸한 어떤 정서로 수렴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다.
‘역도산, 세상을 삼킨다’는 의욕 충만한 카피처럼 이 영화는 세상을 삼킬까. 진정한 것이 세상을 삼킬까. ‘역도산’의 미래가 궁금한 건 이 때문이다. 역도산 기일인 15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