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빨리 찍는 것으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은 “영화는 하루에 평균 60∼70컷을 찍는데 이 뮤직비디오는 모두 25컷 이어서 반나절이면 찍을 분량이지만 장소 이동 때문에 사흘로 잡았다”고 말했다. 권주훈기자
김기덕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찍는다. 댄스그룹 ‘샵’ 출신 가수 이지혜의 솔로 데뷔 곡 ‘사랑해요’의 뮤직비디오다. 저예산 예술영화를 만들어 온 김 감독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다. 뮤직비디오는 예술영화와 거리가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김 감독을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정릉동 북악터널 인근의 뮤직비디오 촬영현장에서 만났다. 그는 “나는 다양한 시선과 정서를 가지고 있다.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랑해요’는 웅장한 느낌의 발라드. 떠나려는 연인을 붙잡는다는 내용이다. 뮤직비디오는 내년 1월 초 공개된다. 다음은 일문일답.
―뮤직비디오를 만들게 된 동기는….
“케이블TV를 통해 뮤직비디오를 자주 본다. 단편영화 같은 뮤직비디오의 리듬을 한번 타보고 싶었다. 때마침 ‘사랑해요’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고, 노래를 듣자마자 장면이 머리에 그려졌다. 바다, 헤어짐, 안타까움 등의 단어가 떠올랐다.”
―어떤 내용인가.
“콘셉트는 몽정이다. 한 소년이 한 쌍의 연인을 보는 관점을 다뤘다. 연인들이 사랑에 대한 이미지와 집착 때문에 헤어지고 죽음을 택하는 과정을 소년의 눈을 통해 그리겠다. 유아적인 느낌으로 가겠다.”
―자기 세계를 이미 구축한 작가가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평도 있다.
“나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 ‘너 변했다’고 한다. 사람을 너무 단편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 다양한 시각으로 인정해 달라. 나는 여러 각도로 산다.”
―대중적인 영화 문법을 구사하지 않는 김 감독의 뮤직비디오는 어떨지 궁금하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문법 같은 게 없다. 말은 안 되지만 이해는 될 것이다. 이미지로 궁금증을 유발시키려 한다.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영화는 필요하지 않다. 요즘 대부분의 뮤직비디오는 싸움질이다. 난 감성이 깃든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앞으로 뮤직비디오를 계속 찍을 생각은 없다.”
―제작사에서 제시한 뮤직비디오 제작비를 깎았다는데….
“90분짜리 영화 찍는데 보통 6억∼7억 원 들였다. 뮤직비디오 5분 분량이면 단편영화인데 많은 제작비는 필요 없다. 나는 영화가 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100억 원짜리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폼은 나겠지만 과장광고하고 애써 관객을 모아야 한다. 이런 구조가 싫다. 제작은 순수하고 정직해야 한다.”
―‘빈집’에 국내 관객 10만 명밖에 안 들었는데….
“그게 내 시장 가치다. 국내 관객들은 아무리 요란스러워도 이 정도 보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한국 영화는 정서적인 부가가치보다 톱 배우와 많은 제작비 등 외양적인 현상이 지배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앞으로의 계획은….
“섬을 배경으로 한 영화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곧 촬영에 들어간다. 세계 시장을 겨냥한 프로젝트를 한번 해보고 싶다. 나도 영화감독한 지 10년이 돼 간다. 전환기를 맞을 때가 됐다. 유럽과 미국에서 제작비 수백 억 원 단위의 영화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단순한 액션이나 대작이 아니라 김기덕 특유의 얘기를 담을 수 있는 영화 제의가 오면 고민해서 결정하겠다. 나를 필요로 한다면 색다른 영화가 아닐까.”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