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현 작가, 지난 토요일자 편지 정겨웠습니다.
바로 다음 날 저녁에 새로 개관한 모차르트 홀에서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 스물네 곡을 연달아 들었습니다. 정 작가의 편지 구절들이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나 같은 음치에게는 때때로 달인들의 연주보다 노랫말이 더욱 가슴에 파고듭니다. ‘보리수’ ‘넘쳐 흐르는 눈물’ 등등. 원기소와 함께 섭취했던 우리들 성장기의 영양제였지요.
그래요. 권 보드래의 ‘연애의 시대’는 수작이었어요. 곧 속편이 나온다는 소식이 있어 기다려집니다. 이제는 그대로 세계어가 된 ‘love’라는 서양말이 ‘사랑’ 대신 ‘연애’로 번역된 배경도 그 책에서 알게 됐어요. 그뿐만 아니라 스웨덴의 교육학자 엘렌 케이의 이름이 ‘무정’을 비롯한 여러 작품들에 언급되었던 사실을 접하고 놀랐지요.
영혼의 성장과 개인의 행복에 가장 필요한 요건이 ‘사랑’이라는 그의 사상을 사위가 새까맣게 굳었던 이 암흑의 땅에 근대의 횃불로 들고 나섰던 1920년대 선구자들에게 자유연애, 자유결혼, 자유이혼보다 더욱 절박한 과제가 있었겠습니까? 새삼 그들의 외로움에 경의를 표합니다.
정 작가, 속절없이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군요. 이 땅의 여성들은 목마른 자유를 위해 치열한 전투를 치렀습니다. 국회에도, 법원에도 여성이 늘었지요. 여성 의원이 늘어나면 국회의사당에서 몸싸움이 사라질 것으로 믿었는데 아직은 숫자가 모자라는가 봅니다. 실로 힘들게 오른 ‘호주제 폐지 법안’은 또 해를 넘길 것 같군요. 성매매특별법이 불러들인 엄청난 파장은 새해에도 가라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라는 객관식 정답이 문제를 영원한 미궁 속에 감금해 두고 있어요. 엄정한 법집행 때문에 나라 경제가 흔들린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여인이 몸을 사고팔아야 지탱할 수 있는 나라라면 차라리 폭삭 망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나 ‘생존권’ 구호를 들고 나선 집창촌 여성들의 데모는 정말이지 당혹스러웠습니다. 이상에 불타는 지식 여성과 몸이라도 팔아야 살 수 있는 배우지 못한 여성 사이의 입장차는 아닐 텐데, 무슨 묘수가 없을까요?
한때 ‘호스티스 소설’이란 비공식 세부 장르가 유행했지요. 에밀 졸라의 ‘나나’도,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도 사내들의 탈선과 팍팍한 도시생활에서 결핍된 낭만과 서정을 보충하기 위한 자구행위로 알았지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 어떤 젊은 작가는 이렇게 썼어요. ‘젊은이들의 탈선을 욕하지 말라. 가난한 사람이 주고받을 선물이라고는 알몸뿐인 걸.’
정 작가, 느리고 긴 가을이 질긴 꼬리를 끌 뿐 왜 겨울이 성큼 다가서지 않는지 조바심마저 납니다. 살을 에는 추위, 천지를 덮어버릴 백설이 간절히 그립습니다.
최근에 나는 실로 전신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상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서울대 국사학과 정옥자 교수가 쓴 ‘오늘이 역사다’라는 책입니다. 책 제목이 곧바로 역사지요.
어린 세 딸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든 아버지의 이야기. 그 시퍼런 유년의 기억을 아무런 수식 없이 담담히 적어 내는 저자의 무서운 절제에 절로 무릎이 꿇어지더군요. 금남의 땅이었던 국사학계에 자신의 성을 세운 정 교수의 에세이에서 한 점의 마제(磨製)석기가 연상되었습니다. 정 작가, 부지런히 갈고 닦으세요. 우선 감기 조심하세요.
안경환 서울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