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화백이 서울 종로구에 있는 홍어 요리집 ‘순라길’에서 홍어 삼합을 취재하고 있다. 박영대 기자
“흑산도 홍어는 요렇게 야들야들한 게 입에서 녹아부러. 씹었을 때 뻣뻣한 건 수입 홍어거나 가오리야.”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묘 순라길 뒤편의 홍어 전문집 ‘순라길’. 음식만화 ‘식객’의 작가 허영만 화백이 주인 김부심 씨(63)를 상대로 홍어를 취재하고 있었다.
“홍어는 삭히는 게 젤 어렵지. 열흘 이상 삭혀야 하는데 어떤 곳에서는 식용 암모니아로 2∼3일 만에 익혀 버리거든. 그러면 냄새가 독해져. 삭히는 거 제대로 하려면 20년 이상 홍어를 만져봐야 해.”
30년 경력의 김 씨 얘기는 고스란히 허 화백의 취재 노트에 담겼다. 그는 이어 카메라를 들고 홍어 삼합(홍어+돼지고기수육+김치)을 비롯해 밑반찬, 그릇, 주방, 건물 전경 등 수십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가 홍어 취재에 열을 올리는 것은 13일부터 동아일보에 다시 연재되는 ‘식객’의 첫 소재가 홍어이기 때문. 9월 초 연재를 중단한 지 석 달 반 만이다.
취재 담당 화실(畵室) 직원이 이미 1주일간 전남 목포 흑산도 일대를 돌며 홍어 관련 기초 취재를 마쳤으며, 이어 그가 직접 유명 홍어 요리집을 돌고 있는 것이다. 그도 목포 나주 일대를 이틀간 돌아볼 예정이다.
“음식 잘하는 집 주인들은 철학이 있어요. 이 집 주인은 좋은 재료를 사지 못하면 요리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누구보다 먼저 새벽시장에 가서 상인들이 맨 위에 쌓아놓은 물건을 산답니다. 상인은 항상 좋은 물건을 위에 올려놓기 때문이라는 거죠. 우리도 좋은 그림 그리려면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이렇게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야 해요.”
연재를 쉬는 동안 그는 10월 중순 2주간 산악인 박영석 씨와 함께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정상을 밟았다. 11월 한 달 동안은 뉴질랜드 전역을 돌며 몸과 마음을 충전했다.
“오래 쉬니까 불안하더라고요. 밥줄이 잘릴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만화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작가로 꼽힌다. 직장인처럼 오전 9시 출근, 오후 5시 퇴근을 지킨다. 물론 그의 사무실은 화실이다.
그는 올해 상복이 터졌다. ‘식객’으로 부천국제만화축제(BICOF) 만화상, 대한민국만화대상, 오늘의 우리만화상 등을 탔다. 그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한 평론집도 나왔고, 10월엔 KBS1 TV 독서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에서 만화책으로는 처음으로 ‘식객’을 다뤄 저자로 출연하기도 했다.
“‘식객’만큼 정신적 물질적으로 공들인 만화가 없는데 여기저기서 상을 타니 보람을 느낍니다. 앞으로 요리와 사람 사는 이야기가 맞아떨어지는 ‘식객’으로 보답해야죠.”
쉰일곱인 그는 “젊은 작가들을 제치고 (내가) 굵직한 상을 탔다는 사실이 만화계의 폭이 좁다는 것을 보여줘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상금을 모두 이웃돕기에 썼다. ‘오늘의 우리만화’ 상금 300만원에 700만원을 보태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했고, ‘BICOF’ 상금 300만원도 노숙자를 위한 매트리스 1000장을 전달하는 데 썼다. 매트리스는 허 화백의 뜻에 공감한 제조사 사장이 재료 값만 받고 만들어 줬다. 대한민국만화대상 상금(1000만원)도 이웃돕기에 쓸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 3∼4년간 다른 만화는 그리지 않고 ‘식객’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앞으로 그가 다룰 소재는 돼지고기, 한과, 미역국, 자반고등어 등 무궁무진하다.
“음식점이 장사 잘된다고 가게를 키우면 반드시 망합니다. 음식을 많이 하면 맛 단속이 안 되기 때문이죠. 그건 만화에도 통하는 충고지요.”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