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관치(官治)의 폐해로 시장경제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원로 경제학자가 관치의 폐해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했다. 정부의 경제정책 입안에 일정 부분 기여해 온 KDI의 경제학자가 정부 개입의 실패를 신랄하게 비판한 것.
올해 말 정년퇴직하는 유정호(兪正鎬·60) KDI 선임연구위원은 그동안 연구한 내용을 집약한 ‘관치 청산-시장경제만이 살길이다’라는 제목의 저서를 지난달 말 내놓았다.
KDI 설립 35년 만에 첫 정년퇴직자인 유 위원은 저서에서 관치의 폐해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한국 경제는 한번도 관치가 없는 시장경제를 경험한 적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관치에 따르는 폐해를 시장경제의 폐해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유 위원은 정부 개입으로 문제를 풀려는 태도는 성장우선론자나 분배우선론자나 모두 같다고 비판했다.
“한쪽에선 ‘소외계층을 위해 현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쪽에서는 ‘정부가 기업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고 반박합니다. 하지만 양쪽 모두 어떤 형태로든 관치를 하자는 말로 들립니다.”
특히 노무현(盧武鉉) 정부 출범 이후 주목받고 있는 ‘386세대’도 진정한 시장경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를 관치로 풀려고 한다고 유 위원은 지적했다.
한국 사회에서 좌든 우든 모두가 ‘관치만능론’에 빠져 있다는 비판인 셈이다.
이에 따라 유 위원은 한국 경제가 살길은 관치에서 벗어나 시장경제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성장과 분배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고 나섰다가 부동산 시장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기업을 개혁한다고 하면서 기업의 투자의욕을 떨어뜨리는 현실은 유 위원의 관치폐해론에 힘을 실어준다.
국책연구기관의 원로 경제학자가 주는 충고라면 정부도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유 위원 말대로 한국 경제가 관치에 묶여 있다면 선진경제로 도약하길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신치영 경제부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