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천하장사가 뭇매를 맞아서야 되겠느냐.”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씨름을 왜 나만....“ 종합격투기 K-1 진출을 시도중인 최홍만(왼쪽)이 13일 스승인 차경만 감독으로부터 K-1 진출을 포기하라는 말을 들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다. 차감독의 표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 구리=연합
“계약은 아직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K-1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절대 가면 안 된다. 그 쪽에서 너를 이용하는 거다.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
LG투자증권 씨름단 해체발표로 뿔뿔이 흩어졌던 선수들이 다시 모인 13일 오후 구리시 인창동 전 LG 씨름단 숙소. 격투기 K-1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 일본에서 K-1 주관사인 FEG 측과 협상을 벌이고 하루 전 귀국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24)이 차경만(45) 전 LG씨름단 감독과 마주 앉았다.
최홍만은 “계약금과 대전료 등 세부사항에서 몇 가지 이견을 좁히지 못해 계약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에이전트가 이번 주 안에 일본에서 귀국하면 구체적인 안이 나올 것”이라며 “해체된 씨름단의 앞날이 불투명한 터에 몇 달 전부터 K-1 진출을 권유해온 에이전트가 있어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그러자 차경만 감독은 “지금 너를 중심으로 새 씨름단 창단을 추진 중인데 네가 그만두면 나머지 15명의 선수들은 뭐가 되느냐”며 “답답한 네 심정을 이해하지만 생각을 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종목은 선수 연봉만 수십 억 원에 달하는데 우리 씨름은 단식농성을 해도 대기업이 팀 운영을 포기하는 현실이 너무 서글프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씨름의 대들보인 네가 격투기 선수가 되서야 되겠느냐.”
차 감독과 최홍만의 면담은 끝내 평행선을 달렸다. 팀을 인수할 기업을 찾아 LG 씨름의 명맥을 잇겠다는 차 감독. 선후배에게 미안하기는 하지만 이제 씨름이라면 만정이 떨어진다는 최홍만. 이들의 입씨름에 다른 선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감독의 고민은 또 있다. 평생 씨름만 해온 최홍만이 몇 달 훈련 한다고 해서 K-1 무대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씨름의 천하장사가 뭇매를 맞고 쓰러지면 씨름 뿐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망신이라는 걱정. 일본 스모 요코즈나 출신인 아케보노도 K-1으로 전향했지만 아직 1승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면담을 끝낸 최홍만은 여전히 굳은 표정. 그는 “K-1이라는 새로운 무대에 도전해 많은 관중 들 앞에서 경기도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는 “2년 계약에 2억원의 대전료를 받고 6경기를 치르기로 한데에는 합의했다. 그러나 계약금 10억원선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계약이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K-1에 가서 절대 성공 못한다. 잘 생각해 봐라.”
차 감독의 격앙된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자기 방으로 들어간 최홍만. 그는 “오늘 밤 부산에 내려가 더 고민한 뒤 최종 결정을 말씀드리겠다”며 문을 닫았다. 씨름의 서글픈 현주소를 보여주는 우울한 만남이었다.
구리=권순일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