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원 변호사께서 밀양에서 일어난 ‘집단성폭행’ 사건의 무료 변론을 맡으신다고 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다. 무료변론을 하시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는지?
“이 사건에 대해 언론보도를 보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청소년 문제를 공부해온 사람으로서 ‘이런 일이 또 생겼구나’하고 개탄하기도 했다. 그런데 동아닷컴에서 최기자가 ‘인터넷상에서 지금 강 변호사가 왜 나서지 않느냐’는 얘기가 있다고 처음으로 전해주길래, 인터넷에 들어가 보니 그런 얘기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밀양이) 거리가 멀다고 내가 방심했던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 후에 울산에 있는 기자 한 분이 피해자 가족하고 연결을 시켜줬다.”
-울산에선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활동하실 예정인지?
“나와 이미경 성폭력상담소 소장이 공동단장으로 몸담고 있는 전국성폭력상담소 피해자 보호시설 전체 협의회에서 몇 달전에 성폭력 사건 수사 재판시민감시단이 만들어졌다.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진지 10년이 돼 법제도적인 면에서는 대강의 장치가 마련돼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실제로 수사 재판 과정에서 보면 아직은 후진국이다. 수사과정상의 폭언이라든지, 수사 재판 과저에서 피해자들에게 가혹한 행위는 없었는지, 증거판단을 잘못해서 가해자에 대해 무죄판결이 나왔는지 시민 차원에서 감시하자는 의미로 발족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선 개인적으로는 피해자 변론으로 간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감시단장으로서 수사상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등 잘못이 없는지 살펴볼 것 같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주장하는 수사 과정상의 여러 가지 인권침해에 대해서 직접 조사한다는 것인지?
“수사도 물론이고, 영장기각 과정에서도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 남성 위주의 편견이나 피해자에 대한 또 다른 인권침해는 없었는지 알아보려 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무료 변론하겠다고 나선 이후 여성부와 인권위 등 국가기관에서 나서서 조사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라. 그래서 우리는 그 조사결과가 잘못되면 이의를 제기하더라도 일단은 국가기관에서 조사하도록 맡겨둘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는 피해 여학생들의 보호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충격에 대한 치유, 학업을 계속 할 수 있게 하는 방법 등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가족들과 상의하고 조력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가해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국가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강구할 예정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오히려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비난 여론이 높다.
“이번 사건이 수사과정상에서 피해자 보호에 굉장히 소홀하고 2차 3차의 피해를 줬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난 것 같다.
이 때문에 성폭력 등 성범죄는 여성 경찰, 여성 검사, 여성 판사가 전담해야 한다.
수사할 때는 여자 경찰관을 배치하고, 영장을 심사하는 검사, 수사하는 검사를 여성으로 교체해야 한다. 법원의 경우에도 3인 합의부로 재판한다면 적어도 1명 또는 2명을 여성으로 배치해야 한다. 또 성폭력을 전담하는 이들 여성들은 성피해 여성에 대한 심리학적인 교육을 반드시 받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폭력 사건의 수사의 신뢰도는 제고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이 경찰청장, 검찰총장, 대법원장의 지시 한마디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성폭력 피해여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애정을 갖는 분들이라면 제고해 주셨으면 한다.”
-현재 가해 청소년들은 ‘인터넷 음란물을 따라했을 뿐이다. 범죄인줄 몰랐다’고 말하고 있는데.
“개탄스러운 것은 가해 청소년들이 반성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가해자 부모들도 피해 여성들을 협박했다는 것은 죄의식이 마비된 현상이라고 본다.
이는 인터넷을 비롯해 여러 가지 경로에서 포르노가 범람해 죄의식이 마비됐기 때문에 그렇다. 인터넷에서 빈번하게 음란물을 접하다 보면, 모방심리를 자극하게 되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다 하는 것이라는 군중심리까지 겹쳐서 범죄를 쉽게 저지를 수 있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이 중심이 된 온라인 정화운동이 함께 일어나야 할 것이다.”
-네티즌들이 강력히 요구하는 것이 ‘가해자 전원 강력 처벌’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들이 미성년자라 혐의가 인정되더라도 낮은 형량으로 쉽게 풀려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성폭력 사건은 남자들이 저지를 수 있는 가정 치사하고 남성답지 못한 범죄다. 심지어 교도소 안에서도 다른 범죄자들도 성폭력 범죄자들을 ‘인간 말자’로 취급하는 풍토가 있을 정도다. 선진국서는 굉장히 엄하게 처벌한다.
우리나라도 성범죄는 형법체계상으로는 가장 중한 범죄에 속한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 보면, 피해자와 합의가 되면 집행유예로 석방된다던가 하는 가벼운 처벌로 끝나게 된다. 개탄스러운 현실이다.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강도죄와 법정형이 같기 때문에 강도죄와 같이 처벌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미성년자의 경우 성인과는 다르게 선도목적의 교정활동이 있어야 하겠지만 처벌자체는 엄격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자라나는 남자 청소년들에게 ‘성폭력은 남자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범죄요, 가장 엄하게 처벌받는 범죄’라는 법 교육을 시켜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성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나라 중에 하나다. 한국 남자들이 얼마나 망신스러운지를 자각해야 할 시점도 이미 지나버렸다. 아직까지도 성폭력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남성들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의미도 된다.”
-일부에서 성폭력을 성매매방지특별법을 연결시켜서, 앞으로는 사창가가 사라지기 때문에 성범죄가 더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 얘기는 성매매 업주들이 퍼뜨린 소리다. 성폭력은 성매매특별법이 생기기 전부터도 세계적으로 1,2위를 다투었다. 이 때문에 성폭력특별법이 10년 전에 마련돼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성매매와 성폭력은 원인과 결과가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매매와 성폭력은 같은 추세를 보인다.성매매가 많은 나라가 성폭력이 많고, 성폭력이 많은 나라는 성매매도 빈번하다. 그건 두 가지다 전형적인 남성들의 성적 타락을 반영하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성적 타락이 폭력적인 방법으로 나타나는 것은 성폭력, 금전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성매매인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여성을 폭력이나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한 ‘여성비하적인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번 사건은 네티즌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 큰 특징이다. 네티즌들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 말해달라.
“네티즌들의 분노 심을 반갑게 생각한다. 네티즌들이 건강한 성의식을 보여줬다. 가해자들을 비판하고 피해여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봇물 터지는 반응을 보여줬다. 오죽하면 강지원 변호사 왜 안 나타나느냐 하지 않았나, 보이지 않는 성교육이다. 반가웠다. 이런 움직임이 더 확산돼서 온라인상의 음란물 공격, 욕설, 인신공격적인 댓글에 대한 건강한 네티즌 의식까지 확산돼 줬으면 얼마나 고마울까 싶다. 난 이번에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게 돼 너무너무 고맙다. 젊은이들의 가능성도 보게 됐다. 자발적인 정화운동으로 나간다면 세계적인 모범사례가 될 것 같다.”
정리=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