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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노블리안스]김상훈/집회 불참 벌금 5만원

입력 | 2004-12-19 18:02:00


최근 한 인터넷기업은 2008년까지 서울 본사를 경기도의 한 신도시로 옮긴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 계획이 발표된 뒤 이전대상 지역 주민들은 주기적으로 서울 본사를 찾아와 ‘조망권 침해’와 ‘교통량 증가’를 막기 위한 항의 집회를 열고 있습니다.

요구 조건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겠습니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보장돼야죠.

대신 최근 만난 A 씨의 이야기를 전해드리겠습니다. A 씨는 이 회사 건물이 들어서기로 예정된 부지 건너편의 ‘M 아파트’에서 서울로 출퇴근합니다. 그에게 지금 사는 신도시는 ‘베드타운’일 뿐입니다.

M 아파트 주민회의는 최근 A 씨에게 집회에 불참할 때마다 벌금 5만원씩을 내라고 ‘통보’했습니다.

A 씨가 낸 벌금은 다른 사람을 고용하는 데 사용된다는 설명입니다. A 씨는 “벌써 15만 원이나 냈다”며 “내지 않으려 해도 자꾸 독촉하는 데야 어쩔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올해 5월 집회 및 시위가 늘면서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본인 대신 집회에 참석시키는 ‘집회 대리참석 시대’가 열렸다는 기사를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취재과정에서 아파트 주변의 파출부 업체, 용역업체 등에 전화해 “B 아파트 주민대표인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리만 지켜줄 분들이 필요하다”고 주문했습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업체가 “4시간에 3만5000원”이라고 가격을 알려줬습니다. 일부 업체는 “아주머니들만 모여 있으면 의심받으니 연령과 남녀 성비(性比)까지 맞춰 주겠다”는 친절함도 보였습니다.

서울 강북지역의 한 아파트에 사는 저는 최근 퇴근 길 엘리베이터에서 ‘납골당 건립 저지 시위 특별 대책’이라는 쪽지를 마주칩니다. 쪽지에는 이런 문구도 적혀 있습니다.

“집회 참석 필수. 반상회 참석 필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할 경우 반상회 불참 벌금 5000원, 집회 불참 5만원.”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집회의 취지와 관계없이 최소한 ‘대리집회’가 성행하는 시대는 좀 씁쓸한 느낌을 줍니다.

김상훈 경제부 기자 sanh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