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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럼/김동성]집권세력 국가관 문제없나

입력 | 2004-12-19 18:18:00


지난 한 해 우리의 정치사회는 이념간 계층간 세대간 균열과 대립 구조하에서 광복 직후의 정치적 혼란을 연상케 할 만큼 극심한 갈등을 보여 왔다. 현직 대통령과 여권은 역대 최악의 국민여론 지지도를 기록했다. 대통령의 권위는 많은 국민의 가슴에서 멀어지고, 공동체 질서의 규범적 통합 기능은 위험 수준으로 추락했다.

지난 십수 년의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국민은 사회 균열과 갈등 요인들을 민주적으로 조정 관리하며 사회통합과 안정을 이루는 민주적 다원국가를 염원해 왔다. 그런데 현실은 노무현 정부의 안보외교 및 대북정책과 범여권 주도의 ‘과거사 청산’ 및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입법추진 과정을 접하며 ‘국가허무주의’에 빠져들고 있다.

▼‘국가 가치’ 운동권시각 고수▼

본질적 문제는 개별 정책의 내용과 관련된 견해 불일치에 있지 않다. ‘노무현 코드’에 기초한 정책노선이기 때문에 (때로는 불필요한) 불신과 대립을 낳고 있는 것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코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단견이다. 우리 대통령은 ‘단순 다수제’로 선출되기 때문에 지지 세력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리고 인사 풀에만 의존할수록 실질적 권력기반은 취약해지게 돼 있다.

‘노무현 코드’를 떠받드는 주축 세력은 역시 1980년대 민주화운동 출신 및 이들과 연대성을 갖는 청장년층이다. 이들 운동권 세력은 현 정부 출범 후 주요 공직에 대거 진출했고, 각종 시민단체를 매개로 사회 주도 세력화에도 성공했다. 그런데 이들의 국가에 대한 인식과 국가의 존립가치에 대한 태도가 중장년층이나 일반 시민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는 데에서 문제가 생긴다.

과거 이들을 휘어잡았던 정치이론은 수정주의적 역사관과 국가독점자본주의 비판, 주변자본주의 비판, 사회구성체론 등이었고, 이들 중엔 주체사상을 받들며 어두운 곳에서 계급론과 민중론적 차원의 ‘민족해방’과 ‘인민민주’를 꿈꾼 사람도 있었다. 이들에게 국가는 권위주의 세력의 정권유지용 ‘거대제도’에 불과했다. 전통적 자유주의(국가의 존립 의의를 인정하면서 다만 개인의 자유와 인권이 국가권력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 상태)에 기초해 민주화를 바랐던 일반 시민과 학생의 국가관과 크게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들 운동권은 이 정부 출범 후 한국 민주화를 성사시킨 독점적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노무현 코드’의 척도임을 자임하는가 하면 ‘시민사회’가 ‘국가’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노 대통령의 세계관과 정치철학이 이들의 논리와 꼭 일치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해를 낳아 온 것은 사실이다. 광복 이후 한국현대사를 ‘분열의 역사’요, ‘기득권자들에 의한 반칙의 역사’라고 정의했고 ‘시민혁명’은 끝나지 않았다고도 했다. 북한은 스스로 변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의 의식이 변하지 않아 남남(南南) 갈등이 생겼다고 본다. 이 모두가 한 진보적 역사학자의 정의가 아니라 국가원수의 발언이기에 국민은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권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추진하면서, 현재적 인권에만 초점을 두고 북한의 대남적화 기도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켜 온 노력들을 무의미한 것인 양 폄훼한다. 그뿐인가. 행정수도이전 위헌 판결을 내린 국가의 최후 ‘보루’인 헌법재판소의 재판관들 역시 헌법기관인 여당 국회의원들에 의해 ‘기득권 핵심 본산’으로 매도되기에 이르렀다.

▼‘시민사회’가 대안 될 수는 없어▼

이미 선진자본주의사회 내에서부터 ‘시장’과 ‘시민사회’가 국가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민족’이 대안이 될 수 없음도 국가 없는 민족의 비극이 증명한다.

노 대통령이 내년에 우선 할 일은 ‘노무현 코드’ 주축 세력과 극단적 ‘반노 세력’ 모두가 ‘국가’로 돌아가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국가의 존립 가치와 국가 기능에 대한 존경, 그리고 국가와 국민의 일체감 및 신뢰가 확보된 상태에서 개혁도 의미를 갖고 통일의 길도 탄탄해지며 사회갈등이 조정 관리돼 통합성과 안정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성 중앙대 정경대학장·국제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