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나눠주는 할아버지’ 유호준 씨. 그는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구 문화의 광장에서 열린 책 나눔 행사에서 “마음의 양식을 나눌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는 책을 이웃과 나눠 보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경기 고양시 일산의 사설 문화원인 일산독서문화원 유호준(柳浩俊·74) 원장은 19일까지 고양시 문화의 광장(옛 미관광장)에서 ‘제1회 고양 책사랑 책 나눔 잔치’를 개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유 원장은 행사기간 중 시민들에게 ‘잠자는 책 교환하기’, ‘어려운 이웃에게 책 기증하기’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안 보는 책을 가져와 교환하거나 더 이상 필요 없는 책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기증해 달라는 취지.
‘책 나눠 주는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그는 이번 행사기간에 한 출판사에서 어린이 책 5000권을 기증받았다. 그는 이 책들을 20일부터 고양시 일대 장애인 학교, 소년소녀 가장 등에게 나누어 줄 계획이다.
그는 1996년 일산으로 이사 온 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아파트 단지에서 버려지는 책을 거둬다가 경로당, 장애인학교, 군부대 등에 전달하는 일을 해 왔다.
멀리 떨어진 기관보다는 거주지(고양시 일산구 대화동) 인근의 초중고교와 동사무소에 책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 가정과 내 이웃, 그리고 내 주변부터 책의 소중함을 느끼면 그 사람들이 나보다 더 열심히 책 나누기 운동에 동참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지금은 주변 사람들이 가장 큰 후원자가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재활용품으로 버려진 책을 거둬 가는 모습을 본 주민들에게 이상한 노인으로 오해받기도 했다. 하지만 책이 폐지로 버려지기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달할 기회를 주자고 주민들을 설득했다.
차츰차츰 모인 책이 1년여 만에 1만여 권이 넘자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경로당을 아예 도서관으로 꾸몄고, 2000년 초부터는 일산독서문화원을 세워 체계적으로 책 나눔 운동을 시작했다.
일산에서는 소문이 나 일부러 책을 들고 찾아오는 사람도 생겼고 여러 후원자들이 책 기증에 동참한 덕에 지금까지 나누어 준 책은 어림잡아 10만여 권에 이른다.
그는 2002년에는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주관한 ‘독서진흥상’ 개인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말이 천대받는 세태를 안타까워하는 그는 “책을 나눠 읽으면 우리말도 살아나고 우리 민족의 고운 심성도 되살아날 것”이라며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책을 나눠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