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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뉴스인물]강금실 전 법무장관

입력 | 2004-12-19 18:36:00

동아일보 자료사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수도 이전 위헌 결정 등 사회를 뒤흔든 일들이 많았던 한해였다. 옛 사건은 잊혀지고 새 사건이 화제가 되는 것처럼 인물도 잊혀지게 마련이고 새 인물이 그들을 대체한다. 올해는 여느 때보다 인물의 부침이 특히 심했다. 한때 국민적 주목을 받았으나 지금은 무대에서 비켜서 있는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너무 즐거워 죄송하다”며 7월 장관직에서 물러난 강금실(康錦實·47) 전 법무부 장관.

그는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이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취임 때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어 파격적인 검찰간부 인사, 검찰수사권 독립에 대한 소신, 검찰조직 개편을 둘러싼 검찰총장과의 갈등 등으로 1년 5개월의 재직기간 중 늘 관심의 초점이었다.

옷차림,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 눈길을 끌어 차기 대통령후보 여론조사에서 박근혜(朴槿惠) 한나라당 대표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때 정치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여권의 총선 출마 권유를 끝내 뿌리쳤듯이 그의 퇴직 후 행보도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평소 ‘노는 게 꿈’이라고 했던 그는 지난달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이달 초 귀국했다. 친구들과 살짝 다녀온 여행이다.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친구의 전시회에도 참석했다. 그는 장관 재직 시절 교도소 재소자들의 그림을 법무부 청사에 전시할 만큼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장관 퇴임 후 그는 지난달 초 흰 치마저고리를 입고 살풀이춤을 추는 사진 한 장으로 근황이 알려졌다. 그의 뜻에 반해 공개된 사진이지만 “역시 강금실답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판사 시절 춤을 배우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그는 변호사 시절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에게서 1년가량 한국무용을 배웠으며 지금도 춤을 상당히 즐기는 편이라고 한다.

이처럼 퇴임 후 그의 삶은 ‘자유인’ 그 자체인 듯하다. 하지만 언론 노출만은 꺼려 사진촬영을 극구 사양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소속 법무법인 ‘지평’에서 변호사 일에 전념하고 있다.

올해 4월 천주교 영세를 받은 강 전 장관은 지금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 ‘야행성’이어서 장관 시절 일찍 일어나는 것을 힘들어했지만 요즘은 새벽 기도에 열심이라고 한다.

그의 한 측근은 “강 전 장관은 ‘장관을 그만두면 연애도 마음대로 하고 싶다’고 했는데 요즘 예수님과 열애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권 못지않게 그를 아쉬워하는 곳은 검찰. 그 역시 검찰 조직에 대해 애틋한 감정을 갖고 있는 듯 유럽여행에서 돌아와 가장 먼저 함께 일했던 법무부 간부와 중견 검사들을 만났다. 송년 저녁을 위한 자리였다. 이 모임에 참석했던 한 검사는 “강 전 장관은 검찰 출신 장관들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 ‘검찰수사 독립’을 이뤄냈다”며 “그의 장관 시절엔 몰랐는데 지금은 좀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과는 유럽여행을 떠나기 전 저녁을 같이했다고 한다. 송 총장은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강 전 장관에게 좀 더 잘해드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고 말하곤 했다. 강 전 장관 역시 가까운 지인들에게 “(검찰총장을) 좀 더 이해하면서 잘 지낼 걸 그랬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

강 전 장관은 내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 총회에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과 함께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 내에선 내년 재-보궐 선거 때 그를 영입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정치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어쨌거나 “오십이 넘으면 아무 직업 없이 그저 놀고 싶다”고 한 그가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