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장 시절에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안대희 부산고검장. 부산=최재호기자
안대희(安大熙) 부산고검장은 한국의 정치문화를 바꾼 검사로 평가받고 있다. 대검 중수부장으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5월까지 사상 초유의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하면서 놀랄 만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 인사들에게 그는 ‘잊고 싶은 존재’다. 여야 핵심 인사는 물론 현직 대통령의 측근도 구속했다. 대검 중수부장 재직 시 어느 유력 정치인은 그를 가리켜 ‘지금 가장 힘센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대선자금 수사가 마무리된 5월 그는 부산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이를 두고 ‘좌천성 영전’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고검장은 수사권이 없는 까닭이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 시절 그의 차남 현철(賢哲) 씨를 구속했던 심재륜(沈在淪)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대구고검장으로 좌천성 영전을 한 일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49세로 가장 젊은 현직 고검장인 그는 “아직 오십이 안됐는데 벌써 뒷방영감이 다 됐다”고 스스로 평하기도 했다.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5월 말 대선자금 수사를 마무리하는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칼에 피를 너무 많이 묻혔으니 이제 부처님께 가서 빌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요즘 시간만 나면 부산의 고검장 관사 옆 범어사와 경남 양산시 통도사 등 사찰을 찾는다. 스스로 “수양 중”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요즘은 찾아오는 사람도, 관심 가져주는 사람도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그가 이끌던 중수부팀이 기소했던 박지원(朴智元)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대법원에서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판결 직후 그는 송광수(宋光洙)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예상치 못한 결과”라며 당혹스러움을 나타냈다고 한다.
스스로 잊혀 지낸다고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6월 경기고 69회 동창회에서 ‘자랑스러운 동기생’에 선정됐다. 9월 서울에서 열린 국제검사대회에서는 공로상을 수상했다. 경남대와 동아대, 영산대 등 지역 대학에서는 앞 다퉈 그를 강사로 모시고 있다. ‘한국사회와 법이념’, ‘법철학’ 등이 특강 주제. 12월 초에는 모교인 서울 숭문중에서 졸업반 학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하기도 했다.
대선자금 수사가 끝난 뒤 검찰 바깥에서는 “다시는 안대희에게 수사를 맡겨선 안 된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러나 후배 검사들은 “그런 검사가 많아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검찰 안팎에서는 현 총장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 그의 향배가 관심거리다. 신임 총장 체제가 갖춰지면 그가 어디로 갈지 주목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2003년의 인물이지, 2004년 인물은 아니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