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예상보다 더 춥군요. 왜 한국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 2’ 개봉날짜를 늦추겠다고 했는지 이해하겠어요.”
5일 자신의 전세기로 인천 공항에 도착한 영국 영화사 ‘워킹타이틀’의 제작자 에릭 펠너의 도착 소감이었다.
대만 등 다른 아시아권 국가에서 ‘브리짓 존스의 일기 2’가 개봉된 것은 11월. 그러나 한국 배급사인 UIP는 “날씨가 추워지면 관객들의 감성코드가 달라지니 개봉일을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e메일만으로 한국 상황을 파악하던 펠너는 한국에 도착해서야 ‘동남아와 달리 4계절이 뚜렷한 한국시장의 특수성’을 절감했던 것.
12월 세계 영화계의 ‘거물급’ 제작자 두 사람이 신작영화 홍보 차 한국을 찾았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 ‘러브 액추얼리’ 등을 제작한 유럽 영화계의 신흥 명가 워킹타이틀의 에릭 펠너와 할리우드의 큰손인 제리 브룩하이머 필름스의 대표 제리 브룩하이머. 두 사람 모두 첫 내한이었다. 지금껏 세계적 영화인의 내한은 톰 크루즈, 웨슬리 스나입스 등 배우에 치우쳤다. 이번 두 제작자의 내한도 각각 르네 젤위거, 니컬러스 케이지와의 동반 여행이라 대중들의 관심은 스타에게만 쏠렸다. 그러나 국내 영화계 인사들은 “거물 제작자들의 마인드맵 속에 한국이 그려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 있는 방한”(영화평론가 오동진)이라고 평가한다.
“한국에 와서 지하철의 옥외 영화광고판을 보고, 멀티플렉스의 관객이나 행인들의 차림새도 보고 나면 한국영화시장이 어떤 특성을 가졌는지 체감하게 되죠. 이후 자신들의 마케팅 계획을 세울 때 그 감을 근거로 하게 될 겁니다.” (이민수 UIP 대표이사)
이들의 내한은 한국이 세계영화산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시장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미 1990년대 말 한국영화 시장은 규모면에서 세계 10위 권 안에 진입했다.
11일 내한했던 제리 브룩하이머는 ‘더 록’ ‘아마겟돈’ ‘진주만’ 등 블록버스터 영화뿐만 아니라 ‘CSI’ 등 인기 TV드라마 시리즈도 기획하는 할리우드의 황금 손. 기자회견에서 그는 “아시아의 재능 있는 감독들이 할리우드의 엄청난 제작지원 시스템을 경험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며 “국적에 관계없이 재능 있는 사람들을 영입하는 것이야말로 할리우드의 경쟁력”이라고 언급했다.
방한 중 이들의 발언은 세계 영화계 거물들의 생존전략을 읽게 하는 것이기도 했다.
워킹타이틀의 펠너는 로맨틱코미디 부문에 관한한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경쟁력을 갖추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가슴에서 나온 진실이야말로 관객의 감동을 끌어내는 기본공식”이라며 “(작가적 실험이나 첨단기술에 의존하기보다는) 대본이나 스토리가 전개되는 상황을 중시하고, 배우 개개인을 섬세하게 관찰해 그 능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나름의 성장비결”이라고 밝혔다.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