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올리버 스톤 감독은 마케도니아의 왕을 가지고 또 하나의 ‘JFK’를 꿈꿨던 것 같다. 그가 연출한 영화 ‘알렉산더’는 20세에 왕이 돼 문명세계의 90%를 정복한 뒤 33세로 요절한 알렉산더를 다루면서도, 결코 ‘영웅’이란 시각에서 그를 바라보지 않는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죽음에 끊임없이 음모론을 들이댔던 것처럼 올리버 스톤은 알렉산더가 미치도록 동방정복을 고집했던 어두운 이면을 쑤시고 들어간다.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에너지로 올리버 스톤이 제시한 것은 바로 그의 ‘콤플렉스’다. 알렉산더(콜린 파렐)는 두 가지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하나는 ‘혈통 콤플렉스’다. 어머니 올림피아(앤젤리나 졸리)가 마케도니아 순수 혈통이 아닌 까닭에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립 왕(발 킬머)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또 다른 하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살부(殺父) 충동’을 느끼던 알렉산더는 어머니의 계략으로 아버지가 암살된 뒤 왕위를 차지하지만, 자신을 아버지의 대용물로 여기는 어머니로부터 도망하려 한다. 이 두 가지 콤플렉스는 알렉산더가 끊임없이 ‘밖으로’를 외치면서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가 되는 세상을 꿈꾸는 강력한 동인(動因)이 된다.
단언컨대, 이 영화의 처음과 끝부분에 배치된 두 개의 전쟁(페르시아 군과 대결하는 ‘가우가멜라 전투’ 및 코끼리 부대와 맞서는 ‘인도 원정 전쟁’)신은 올해 만들어진 영화의 전쟁 장면 중 최고다. ‘알렉산더’의 전쟁신은 ‘트로이’의 그것과 달리 스타일이나 규모보다는 인간의 공황심리를 투영시키는 리얼리티에 초점을 맞춘다. 잔혹한 장면과 지긋지긋할 정도로 괴로운 심리가 완벽하게 겹쳐지는 전쟁신은 그 자체로 알렉산더가 가진 복잡한 내면의 또 다른 표현이다.
하나 더 단언컨대, 이 영화는 위의 두 전쟁 장면을 빼고 나면 지루하다. 이는 2시간 55분이라는 상영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알렉산더의 콤플렉스를 ‘이해’는 하겠는데 정작 ‘느끼지’ 못하는 데서 발생한다. 이는 알렉산더의 콤플렉스라는 사적(私的)인 층위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는 당초 전략과 달리 등장인물들이 실제 보여주는 대사나 행위, 캐릭터가 딱딱한 ‘서사극’의 그것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는 태어날 때부터 남달리 용감하고 겁이 없는 데다 “왕은 가족도 버릴 수 있어야 해”(아버지 필립 왕) “어미 편이 되어다오”(올림피아)와 같은 대사들은 화석화돼 있다. 궁중암투나 알렉산더 군대의 자중지란 같은 에피소드들도 뻣뻣한 데다 밀도가 떨어진다. 알렉산더의 동료인 톨레미(앤서니 홉킨스)의 내레이션은 영화의 호흡을 조절하고 깊이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역할을 하지만, 지나치게 평평하고 점잖은 데다 상상력이 부족하다.
앤젤리나 졸리는 두 말할 것 없이 강렬하다. 하지만 ‘난 섹시해’란 자신감을 버리고 이젠 제발 영화의 일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콜린 파렐의 광기 어린 눈빛은 강박과 정신분열의 경계를 오가며 알렉산더의 움직이는 캐릭터를 제대로 구축했지만, ‘그 안’에 뭔가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중층성은 부족하다.
알렉산더와 그의 전우인 헤파이션 간의 동성애 장면이 수시로 그려지지만 ‘새로운 해석’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이 알렉산더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아니면 알렉산더의 어떤 내면이 그것을 가능하도록 만들었는지를 말해주지 못하는 동성애는 ‘삶’이 아니라 그저 ‘취향’일 뿐이다.
3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